"이건 그냥(사실은몹시) 내 생각인데.."
"저는 (이런저런내가생각해도말이안되는이유때문에)
...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생각이라는 단어가 잔뜩 들어간 문장들을 만나다 생각한다.
생각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제 안에 그냥 담아두거나 재차 다시 살펴볼 새도 없이 툭 뱉으면 듣는 사람을 베고, 슥 치고 가는 생각들. 무책임해. 나만의 생각을 다루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세상사람들은 나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사람들은 나와 똑같이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이 연재의 씨앗이기는 하지만,
숨어도 될 독자는 엉뚱한 곳에서 까꿍, 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제자리란 누가 정하는 것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누구나 생각이 다르다는 말만큼 무책임하고 무례한 말이 또 있을까?'싶기도 하다. 생각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생각이 얼마나 점액질처럼 끈적거리는지 말하려는 것이다.
이 미끌거리는 물질은 무반응으로 일관하면 다시 제 주인에게 달라붙는 습성이 있다. 선물(말)을 주어도 원치 않아 정중히 거절하였다는 한 스님의 말처럼.
제 생각을 가지되, 어떤 마음으로 가져야 하는지를 먼저 말해야 할 것이다. 남의 말과 글을 읽지도 듣지도 않는 세계에 질문의 충동이 자라날 수 있을까?
격앙된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조셉 캠벨이 자신의 책에서 언급한 시(한 거미여인의 주문이라고 함) 한 수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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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을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네 손을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네 머리를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그럼 네 발은 꽃가루, 네 손은 꽃가루, 네 몸은 꽃가루.
네 마음은 꽃가루, 네 음성도 꽃가루.
길이 참 아름답기도 하고,
잠잠하여라.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셉 캠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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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에 <세계의 시> 수업을 열어보려고 한다. 첫 시간에 읽을 시는 바로 이 것!
Wild Geese - Mary Oliver(<기러기>, 메리 올리버)
You do not have to be good.
착해지지 않아도 돼.
You do not have to walk on your knees
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
for a hundred miles through the desert, repenting.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You only have to let the soft animal of your body
love what it loves.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 두면 돼.
Tell me about despair, yours, and I will tell you mine.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Meanwhile the world goes on.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Meanwhile the sun and the clear pebbles of the rain are moving across the landscapes,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over the prairies and the deep trees,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the mountains and the rivers.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Meanwhile the wild geese, high in the clean blue air,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are heading home again.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Whoever you are, no matter how lonely,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the world offers itself to your imagination,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calls to you like the wild geese, harsh and exciting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over and over announcing your place
in the family of things."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필사적으로 필사의 빛을 찾아볼 요량이다. 함께 낭독하고, 따라 써보고 나서 물어볼 것이다. 어떤 구절이 가장 좋았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숨은 독자를 찾는데 방해가 되므로 작가 소개나 시 소개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아예 과감히 생략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 솔직히 시인의 배경을 잘 알지 못해도 시인이 얼마나 자연과 진심으로 교감하는지 몇 줄만 읽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몇 가지 떠오른 질문들
1. good, kind, soft의 차이는 무엇일까?
2. 착한 행동으로 손해 본 경험이 있는가?
3. '무릎으로 기어 다닌다'는 표현을 이해하는 대로 적어보자.
3-1. 나의 표현으로 바꾼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4.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이 의미하는 것을 무엇일까?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5. 김연수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이 시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5-1. 이 시의 한 구절로 소설을 만든다면, 그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시간이 허락한다면 시를 하나 더 살펴볼 것이다.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魂のいちばんおいしいところ>,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郎
*영어로 쓰이지 않은 시는 원문을 공부하는 것보다 다양한 시를 읽힌다는 측면에서 접근
신이 대지와 물과 태양을 주었다
대지와 물과 태양이 사과나무를 주었다
사과나무가 아주 빨간 사과 열매를 주었다
그 사과를 당신이 내게 주었다
부드러운 두 손바닥에 싸서
마치 태초의 세계처럼
아침 햇살과 함께
어떤 말 한마디 없어도
당신은 나에게 오늘을 주었다
잃어버릴 것 없는 시간을 주었다
사과를 길러낸 사람들의 미소와 노래를 주었다
어쩌면 슬픔도
우리들 위해 펼쳐진 푸른 하늘에 숨은
저 목표도 없는 것에 거슬러서
그래서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새
당신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나에게 주었다
다시 떠오르는 질문들
1. '영혼이 맛있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준 사람이 있는가?
아이들은 열린 질문을 가장 싫어한다. '아이들'을 '사람들'로 바꿔도 무방하다. 나 또한 자주 그러하니까. 확실한 답을 원하고 누군가 이끌어주길 원한다. 그 강도가 세지는 걸 견디지 못할 뿐. 이렇게 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 <세계의 시> 수업이 매년 여름과 겨울에 안착할 수 있도록 알맞은 시들을 골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