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이들은 공지가 너무 길면 읽지 않는다. 읽기 어려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냥 안 읽어버린다. 정보는 누락된다. 난이도를 떠나 긴 글은 일단 읽지 않는다. 그건 성인 독자도 마찬가지다. 긴 글은 정보처리능력과 집중력, 인내력 등 꽤 많은 능력을 필요로 한다. 길면, 망설여진다.
우린 읽기 싫고, 잃기도 싫다. 정보가 과잉인 시대에서 읽지도 않을 책들은 쏟아져 나오지만 읽지 않은 정보에 대한 집착은 지독하다.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은 나 혼자 모르면 소외감을 느끼고,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심리를 일컫는 말이다.
Z세대에게 독서가 힙한 문화가 되었다고 들었다. (어떤 기사에서 읽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 출처가 분명했던들 누가 공감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문화 소비로서의 독서'가 힙하다는 뜻일 것이다. 읽기 싫지만 잃기는 싫은 시대에 살고 있는 세대에게 읽히지 않는 텍스트는 공포가 된다. 무시하면 무지해지고, 무시하지 못하면 불안해진다.
책을 고르는 일은 저자와 추천하는 이의 이름값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누군가 한국어든 외국어 원서든 이 바쁜 시간에 손에 쥐고 있다면 우리는 이 텍스트의 효율을 설명할 저자와 추천인의 신뢰와 명성의 밀도를 따지게 된다. 어째서 이 많은 책들 중에 이 책을 골라 읽고 있는지.
그래서 책 밖의 삶, 그러니까 (책을 쓰지도 추천하지도 않았지만) 정작 읽는 당사자의 삶은 더욱더 중요해진다. 독자 자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이 된다.
우린 어떤 텍스트를 싫어할까? 어떤 텍스트에 자꾸 손이 갈까? 어떤 문장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는가? 어떤 문구에서 마음이 편해지는가? 자기만의 문장을 찾는 것은 자기 앞의 생을 읽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생은 너무 난해해서 읽어도 읽어도 어렵다. 어떤 삶은 읽히지 않아도 붙들고 있다가 '아하'하고 깨닫게 되기도 한다.
하나의 동일한 텍스트는 시간의 흐름을 타면서 다르게 읽힌다. 독자는 무럭무럭 자라며 텍스트에서 더 많은 것들을 읽어내고, 함께 읽을 다른 독자들을 찾기도 한다. 잃기 싫은 시대의 독자는 각자의 문장을 찾는 자기만의 방식을 찾는다.
살아보지 않은 문장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디지털 네이티브는 길이마저 긴, 모르는 생에 대해 좀 더 명민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지도하는 사람(이를테면 부모, 교사, 그 밖의 어른)이 '가르쳐 바꿀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 지나치게 설명을 하게 되는데 '지켜보면서 흥미나 관심이 꺾일 때 한 번씩 도움을 준다(혹은 함께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그저 독자들이 모인 가운데 리더의 위치를 갖게 된다. 그 편이 더 바람직하다.
잃기 싫은 세대와 대화를 나누려면 어른은 먼저 괜찮은 독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