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먹는 시

가벼운 발걸음은 연습으로 될까?

by 뭉클


MZ 세대의 독자를 만난다면 우리 사이의 거리는 측정 가능할까? (MZ라고 다 같은 MZ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 보면(내가 얼마나 MZ가 아닌지 알면) 그 거리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거리를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진 모르겠다. 꼭 MZ처럼 굴어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시를 읽는 일은 나 아닌 사람으로 살아볼 절호의 기회다. 다음 생을 기약하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경험이다. 요즘 아이돌 음악이 (듣는 음악이라기보다) 보는 음악인 것처럼 요즘 시인의 시는 음유 시인의 LP 선율보다는 치밀한 기획 전시 가까웠다.


박참새의 시집 《정신머리》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끝판왕. 기존 시 작법에 브레이크를 쉼 없이 거는 뒷심 좋은 시인의 출현. 소설적인 쓰기, 일기인지 이메일인지 편지인지 그래서 시이긴 한 건지 모르겠는 콘셉트의 시들은 되려 '그래서 시가 도대체 뭔데?'라고 되묻는다. MZ 다워.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아니 세계가 그래왔던 관념들을 비트는데 시에 관해 쓰는 시, 작품에 관한 작품, 급기야 쓰기에 관한 쓰기까지 자의식으로 충만해진다. 그렇지만 날 들키긴 싫어.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이렇게 대꾸하는 것 같다.


콘셉트 아트는 아이디어가 작품의 전부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작품의 제작 과정과 그 결과물에 권위와 의미를 부여하던 예술은 아이디어 기획, 그러니까 '이 작품을 작품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더 중요해지는 쪽으로 건너왔다. 그 콘셉트 아트를 시에서도 발견한다. 시인의 배경이나 작품의 소재를 궁금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 작품은 이미 시작도 하기 전에 제 할 일을 마쳤기 때문이다. 시인을 작품과 동일시할 필요도 없다. 시에 잠시 들렀다 가는 사람처럼 보이니까.


박참새의 시집 《정신머리》


이런 시들의 문형을 따라가면 나를 벗어난 쓰기가 가능할 것 같다. 쉽게 말하면, 내가 (카메라로 찍듯이) 나를 보면서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게 해 준달까? 읽는 재미보다 보는 재미가 있다. 나를 '보고' 눈앞에 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너를 '보는' 재미.


기존 시 패러디, 챗GPT로 원문을 번역한 시, 원문보다 각주가 더 중요한 시는 반전, 유머, 콘셉트로 가득하다.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꿈꾸고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 의식의 흐름대로 정돈되지 않은 정돈됨 그게 가능하다면, 다소 산만하게 내용을 주저리주저리 적어놓은 듯해도 나름의 일정한 톤을 갖고 있다면, 나는 이 계획된 해체에 감탄한다.


시점이 한 시도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변덕스럽다.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극배우 같기도 하다. 진지함과 가벼움을 왔다 갔다 한다. 말장난, 말놀이가 시라는 시인의 말을 참고 삼아 어른적 생각과 덜 심각한 생각 사이를 애써 오간다.


진지와 심각은 달라! 시인이 말했다.

진지한 건 몰입했다는 거야.

유머러스해도 진지할 수 있거든.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불가능한 걸 생각해 봐.

되도록이면 더 말도 안 되는 쪽으로. 그래야 재밌어.

그리고 아주 구체적으로 써봐.


객관과 주관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설득력 있는 주관이 결국 객관이 되는 거라던 책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나 더, 활기. 그 운동에너지란 끊임없이 나열하고도 지치지 않는 것. 내 앞에서 온갖 TMI를 재잘대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건 에너지. 욕, 리듬, 별 뜻 없이 그냥 하는 말, 기운, 폭발하는 울음... 다 그냥 에너지였다.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 진지했다가 순식간에 해맑아지는 건 유머. 가벼움.


우리는 그 가벼운 발걸음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그게 애써서 되는 거라면 말이다. 다른 사람의 말, 움직임, 글, 목소리를 잘 들을 것. 잘 들어야 해. 귀가 좋아야 해. 잘 듣고 자기 글 속에 담으면 활기가 생겨.


아참, 나이가 어린 사람만 활기 있는 글을 쓰는 건 아냐. 김혜순의 시를 읽어봐.


시에서 시로 시작하는 밤.









하이힐을 신은 새 한 마리

아스팔트 위를 울면서 간다


마스카라는 녹아 흐르고

밤의 깃털은 무한대 무한대


그들은 말했다

애도는 우리 것

너는 더러워서 안 돼


늘 같은 꿈을 꿉니다

얼굴은 사람이고

팔을 펼치면 새

말 끊지 말라고 했잖아요

늘 같은 꿈을 꿉니다

뼛속엔 투명한 새의 행로

선글라스 뒤에는

은쟁반 위의 까만 콩 두 개

(그 콩 두 개로 꿈도 보나요?)


지금은 식사 중이니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걸어가면서 먹습니다

걸어가면서 머리를 올립니다

걸어가면서 피를 쌉니다


그 이름, 새는

복부에 창이 박힌 저 새는

모래의 날개를 가졌나?

바람에 쫓겨 가는 저 새는


저 좁은 어깨

노숙의 새가

유리에 맺혔다 사라집니다


사실은 겨드랑이가 푸드덕거려 걷습니다

커다란 날개가 부끄러워 걷습니다

세 든 집이 몸보다 작아서 걷습니다

비가 오면 내 젖은 두 손이 무한대 무한대


죽으려고 몸을 숨기러 가던 저 새가

나를 돌아보던 순간

여기는 서울인데

여기는 숨을 곳이 없는데


제발 나를 떠밀어주세요


쓸쓸한 눈빛처럼

공중을 헤매는 새에게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고

들어오면 때리겠다고

제발 떠벌리지 마세요


저 새는 땅에서 내동댕이쳐져

공중에 있답니다


사실 이 소리는 빗소리가 아닙니다

내 하이힐이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오늘 밤 나는

이 화장실밖에는 숨을 곳이 없어요

물이 나오는 곳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나를 위로해 주는 곳

나는 여기서 애도합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은 날개를 들어 올리듯

마스카라로 눈썹을 들어 올리면


타일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나를 떠밉니다


내 시를 내려놓을 곳 없는 이 밤에


<날개 환상통>, 김혜순




*그 밖에 시 친구들과 대화 중에 나눈 이야기들:

Nikki S. Lee Project: https://youtu.be/oI8xpJItPVI?si=88biPPBmG5e8AJU3


마우리치오 카텔란: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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