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문보영을 마셨다.
1. 시 X 커피
천사는 흔들리느라 피곤할 권리가 있다
폭죽을 터뜨리며 도로를 질주하는 것이 가능해진 밤
아파트 공지사항
밤이 되면 구르기 시작하는 어두운 의자들
애인은 콧구멍의 미래를 낙관한다
2. 대화 편지
구르는 사랑 1, 2
3. 문보영 X 커피
문보영 블렌드
어젯밤 시친구들과 문보영을 썼다. 김유림, 최재원, 박참새의 시에 비해 좀 더 서사로 읽히는 시. 언제든 소설이나 에세이로 번져도 좋을 시. 다만, 평론가의 말처럼 기기묘묘하고 명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텔링.
신이 자주 등장한다.
신을 자주 모독한다.
그리곤 아닌 척한다.
저항, 도발, 유머, 가벼움, 내가 되지 않기, 허무, 시니컬...
여기에 낯설게 하기, 다르게 쓰기, 가볍고 웃기게 쓰기, 메타적으로 쓰기... 가 결합되면
우리의 시 쓰기는 아주 재밌는 놀이가 된다.
거대한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는 신은 삐져나온 오리털을 무신경하게 뽑아 버리는데,
사람들이
죽었다
세상을 떴다
숨통이 끊겼다
사라졌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죽는다.
마지막에 '~라고 시인은 썼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아님 말고, 내가 그런 말 한 거 아니야'라는 식의 가벼움이 느껴진다. 본디 무거워지려는 것을 가볍게 쓰려면 내가 쓰면 안 되는 것이다. 내 것이 아니어야 가벼워지는 것이다. 가능해 보이지만 불가능해 보이면서도 가능할 것도 같은, 나 아닌 것을 쓰기.
천사는 다른 천사에게 외쳤다.
그만 좀 당신으로 살란 말이에요. 우리 모두 그걸 연습하러 여기 온 거잖아요.
<천사는 흔들리느라 피곤할 권리가 있다> 중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꿈은 내가 되는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나는 이미 너무 나 자신으로 살고 있었다. 나를 벗어나 나 아닌 사람으로 쓴다는 게 진지하고 심각해진 어른에게 얼마나 낯선 일인지.
『신의 손』은 책 제목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책의 제목이었다가 책 주인의 손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중적으로, 우회적으로 말하는 방식 그래서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정작 쓸 수 없음을 드러내는 방식.
어떤 이야기는 너무 고통스럽고 어려워서 우회로만 갈 수 있는 통로, 세계 같은 것. 직진하는 글도 있지만 시작해서 우물쭈물 헤매는 방황까지 모두 담아내는 글도 있다. 누군가에게 잡소리로 들릴 그런 이야기. (박솔뫼, 정지돈은 그런 식의 글을 쓴다.)
그림을 담은 또 다른 프레임이 등장하고 또 그걸 담아내는 화폭이 등장하는, 그림의 진실 자체를 의심하는 것은 현대인의 분열적 시선을 보여준다.
시인은 여덟 번째 워크숍 중에 이번 (경계를 횡단하는 글쓰기, 즉 MZ 시인의 시 쓰기) 워크숍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시에선 등장하지 않을 감성, 신과 오리털, 코스트코빵을 병치하는 선택 같은 것.
21세기 카프카 답게 문보영은 아주 큰 문제는 시답잖게, 가장 별 것 아닌 것은 호들갑을 떨며 과장한다. 카프카는 '벌레'로 표현했던 '부조리'를 가능한 한 웃기고 기괴한 상황으로 그리는 식이다. 남자친구는 헤어지면서 뇌를 두고 갔다. 칫솔이나 산책길의 추억 같은 것을 남기기보다, 슬픔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박차고 나간다.
디테일
메타
유머
도발
저항
우리는 15분간 〈입장모독〉이라는 시를 다시 썼다. 신에게 코스트코 빵을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나열해 보기로.
이번에도 딱히 나를 벗어나진 못했지만 '다르게 쓰기 × 웃기게 쓰기'에 중점을 두고 썼는데 반응이 꽤 괜찮았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여러 가지 효용을 지니는데, 그건 남이 되면서 내가 되지 않는 것 그 이상이다. 또한, 시를 쓰면서 스스로 재밌어야 남도 재밌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진실되지 마!
또 진심이었네
너무 친절하다
되바라져!
착하지 마!
시인은 우리에게 말했다.
아예 빵이 아닌 다른 걸로 갈아타봐.
뛰어넘자, 현실을!
내가 되지 않는 것.
어쩌면 거기서 진짜 내가 나올지도 모르지.
다음 주가 마지막 워크숍이라 너무 슬프고 그 사실만큼은 도무지 웃기게 쓸 수 없다고 하자 시인과 친구들은 빛과 소금빵 언니에겐 시카고 피자가 있으니 슬퍼지지 말라고 했다.
시 친구는 늘 피곤한 천사에게 든든한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