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공동체 1
요즘 세상에 누가 책을 읽는다고, 혼자 좋아하는 걸로 못 끝낸 작은 마음들이 모이니 커다란 진심 공동체가 되었다. 이제 막 모였을 때 우린 고독한 독서 데이터 베이스였다. 진심을 공유하려고 모였다는데서 이 모임은 제 역할의 반은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책Q 북큐레이터스는 친목 모임이 아니다. 밥벌이고 꿈 자체다. 반가운 마음만으로 괜찮은 그런 모임이 아니길 바랐다.
책방 대표는 혼자 힘으로 해내는 큐레이션에 한계를 느끼고 시너지를 내길 바라며 우리를 불러 모았다. 큐레이터는 각자의 취향과 관점을 내세우는 만큼 그 자체로 다른 독서생활을 하기 어려워지기도 하는데 큐레이터들의 독서 세계도 확장되는 것 같았다. 새로운 이야기에 마음을 여는 계기는 책을 읽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큐레이션과 달리 오프라인에서는 서로의 픽을 공감하고 나누는 공간 속 연대감이 있었다. 발품을 팔아 들어선 공간에서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만나는 경험은 오직 그걸 선택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책방은 책꾸러미, 강연, 북토크, 학교 단체 방문 등 이미 1인이 해내기에 버거운 일들로 가득해서 초반에 시작이 지지 부진했다. 진심 공동체 중에서도 유난히 진심인 내가 바쁜 대표님에게 '우리 전시는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요?'하고 묻게 된 것이 기폭제가 되어 6월 책Q 전시는 무탈히 진행되고 있다.
동네책방에서 동네사람들과 나누는 책 이야기는 대형 문고나 배송이 빠른 온라인 서점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 있다. 책은 느린 매체이고 연대로 이어지는 특성이 있어서 동네책방에 책을 주문하고 북토크나 워크숍에 참여하는 일이 얼마나 애착과 진심으로 똘똘 뭉친 우정을 만들어내는지 실로 놀랍다. 교실이나 온라인 큐레이션에 느낀 큐레이션에 대한 갈증으로 찾은 동네책방에서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고 나서부터 이 큐레이션이 시작이지만 끝은 아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
소생을 거듭하는 독서 공동체의 힘은 이토록 작은 걸음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진심 공동체 2
5주간의 시 워크숍이 끝났다. 여운이 길게 남아 새벽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7월에 다른 워크숍에서 볼 기회가 있겠지만 첫 워크숍에서 나눈 시친구들과의 우정은 일생에서 구상해 본 적 없는 소설이었다. 그간 MZ시인들의 시집 네 권을 다뤘지만 마지막 시간인 '어느 아무의 아무 쓰기'를 시인을 포함한 모두가 가장 즐겼다. 아쉬워서 다시 도전해 보는 시 쓰기나 어떤 용기가 필요했던 실험적 시 쓰기로 이어지면서 서로의 시에서 넘치는 배움과 재미를 얻었다.
'어느 아무의 아무 쓰기'는 이전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과 도전들로 이루어진 만큼 각자의 소감과 시인의 피드백이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우리는 평소보다 더 긴긴밤을 노래했다.
- 민정은 시에 재미를 넣는 재능이 있어.
- 오! 정말?
-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자신만의 빌드업이 있어. 다시 읽어봐. 남들도 그렇게 읽을지 생각해 봐.
- 뭐? 당연히 이렇게 생각할 줄 알았는데?
- 자신의 강점이 뭔지 알아야 해. 어떤 글은 의도치 않았을 때 제일 잘 쓴 글이 돼. 자신의 강점이 뭔지 모르면 성의껏 억지스러운 글을 쓰게 되지.
- A는 나이 든 사람이라 절대 현대시의 세계에는 입장하기 어렵겠다고 했지만 툭툭 내뱉는 시가 온통 현대시였지. 오히려 공들여 쓴 글에선 그런 구절이 안 보였고. (맞아)
- 내가 알던 것을 서술하는 수준을 넘어서 내 문장의 힘을 믿어야 해.
- (전달되고 촉발되는 힘!)
지난 5주 간의 배움과 깨달음이 스쳐갔다. 이미지 하나가 강렬한 서사가 되는 지점, telling은 아닌데 충분히 telling은 된 showing. 이미지는 단순히 빛이 반사된 피사체가 아니라 상황, 성향, 관계, 변수가 촘촘히 직조된 직물 같았다.
- 내 문장을 내가 구경할 수 있어야 해. 남이 쓴 것처럼. 춤을 춘 것을 함께 살펴보는 것처럼.
시공간을 다르게 보는 연습, 내가 생각하는 걸 남도 알 수 있게, 하지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하는 건 얼마나 세세한 기술인지. 앤 카슨이 떠올라 책장을 뒤졌다. <빨강의 자서전>,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고전문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들. 시로 쓴 소설. 오래전에 내가 보낸 시를 이제야 받은 느낌이었다. 앤 카슨 같은 시나 소설을 쓰고 싶다. 하지만 시인이 말했듯이 많이 읽다 보면 따라 하게 된다. 남을 따라 하는 능숙한 습작과 내 것으로 전용하는 단계 사이에는 아주 큰 거리가 존재한다.
- 민정의 시는 이미지가 아니라 자꾸 서사가 돼. 교사여서 친절한 특성도 있겠지만 시는 하나의 이미지야.
정서를 걷어내는 것이 아니라 따뜻함, 배려, 사랑받고 싶은 마음, 오해받기 싫은 마음을 버리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애초에 시 쓰기를 시작한 이유에 가장 가깝다고 느낀다. 마지막 시간이라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던 질문도 용기를 냈다.
- 평소 내 삶에서 거리를 두려고 무진 애쓰는데 여전히 과몰입하는 경향이 있어. 글을 쓰는 것도 메타인지로 나를 종이 위에 올려두고 보려는 시도겠지. 다들 하나쯤 갖고 있는 스킬이랄 게 있을까? 우리가 해온 것처럼 시를 다시 쓰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겠지?
- 응, 물론이야. 근데 그냥 느낌이나 어휘 사용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구조를 분석하는 거야. 3인칭 주어로 내 이야기를 써보는 것도 좋아. 하나에 집중하는 연습은 어쩌면 명상에 가까운 것 아닐까 생각해.
- 민정은 스스로를 깨는데 관심이 있구나
- 응, 내가 자꾸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고, 이번 시 워크숍을 찾은 이유기도 해. (이전까지의 정체성이 교사보다는 '읽고 쓰는 사람'에 가까웠다고 말하던 중이었다.) 쓰다 보니 점점 분명 해지더라고 내게 무엇이 젤 중요한지. 새로운 정체성을 발명하고 계속 깨나가는 게 꿈이야.
- MZ들의 시가 확실히 행동의 에너지를 준 거 같아. 이전의 시가 사유의 에너지를 더 품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우리는 동시대와 호흡하는 기성 작가들이 당대성을 유지하는 노력에 대해 얘기했다. 쓰는 사람을 일으키는 에너지. 활기, 충동, 도발과 패기에 대해서도.
나를 깨는 시간 속에서 시친구들을 쌓았다.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마음속에 오래 남을 친구들. 우리는 시 속에서 서로를 언급하거나 지인을 언급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누군가를 계속 언급해서 유머가 되려면 그 사람이 엄청 유명해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 나를 시 속에 언급했길래 말했다.
"어떤 식으로든 열심히 살아볼게."
언제나 유머 연구는 신난다. 충동과 수용 사이를 오가는 이 고독한 몸부림의 시간에 친구들이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내 감성을 이해하고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다니. 글쓰기. 시 쓰기 모두 신비로워.
12화를 끝으로 <동네 책방 큐레이터 일지> 연재를 마무리 합니다. 끝까지 뭉클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