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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Jul 25. 2024

시는 아니지만

무엇보다 시*로 읽히는, <나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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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희귀하지만 작가는 더 희귀하다. 고 읽는 시간을 일상을 쪼개 구하는 만큼 나는 되도록이면 시간을 견뎌낸 책들부터 읽으려고 한다. (신간도 매일 장바구니를 터질 듯 채우고 있지만 말이다.)


혹여 자신이 쓴 책이 1쇄에 그치거나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저자사정이고 (희귀한) 독자에게 꼭 필요한 책은 이미 차고 친다. 지금도 계속 찍혀 나와 소화는커녕 채 삼키기도 어려운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가. 고전을 제외하고 동시대에서만 나눌 수 있는 '작은' 이야기도 얼마나 많은가. 살아남을 만 살아남는 건 적자생존이 아니라 극강의 정교함이다.


얼마 전 누군가 피드에서 책에 관한 책을 좋아해서 김하나 작가의 황금 종소리를 골랐다는 글을 봤을 때 그냥 그 책을 읽지 책에 관한 책을 읽을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했지만 내 책장에 꽂힌 책에 관한 책들은 순전히 책 자체보다 그 책을 고른 작가/추천한 사람에 대한 신뢰로 사들인 것이었다. 이 책 또한 '나쁜 책'이라는 주제로 큐레이션 된 '책에 관한 책'이었다. 김유태 기자에 대한 신뢰가 '나쁜 책' 큐레이션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 것이다.


시인이 기자일 때, 기자가 시인일 때 쓸 수 있는 글이다. 신형철 교수가 추천사에서 썼듯, '이글거리는 문장들의 결기'만으로도 이 책의 소장 가치는 충분하다. 카프카적 뾰족함과 학자의 꼿꼿함이 시인의 진심과 만났다.


글쓰기가 뭐냐고 묻는다면 근래의 나는 태도라고 답할 텐데 작가는 글을 앞우고 자신은 최대한 낮춘다. 치열하고 성실한 조사에 기반한 글은 작가의 겸허한 태도로 완성되는 느낌이다.


1부 아시아인들은 못 읽는 책

2부 독자를 불편하게 할 것

3부 생각의 도살자들

4부 섹스에 조심하는 삶의 이면들

5부 신의 휘장을 찢어버린 문학

6부 저주가 덧씌워진 걸작들


큰 목차만 훑어봐도 움찔움찔한 이야기들의 향연. 안전한 이야기들을 비웃듯 위험해서 나쁘고 그래서 좋은 책들은 헌책방에 숨죽이고 있다 작가의 노력으로 소생했다. 치, 문화적 현실의 고발에서 그치지 않고 문학적 가치를 읽어낸다. 쁜 책이라서 눈길이 갔다면 사실은 왜 좋은 책인지 말하면서 발길까지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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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언제나 포장지 없는 날것으로 우리에게 비극을 보여주지만 소설이 그 날것을 거울처럼 옮겨 적는 일은 늘 불허되었습니다. 토니 모리슨의 글은 그 날것을 바라보게 해주는 창과 같은 기능을 했습니다. 가장 푸른 눈, 97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다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아직 인간은 그런 고통을 치유할 만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먼 부엉이, 7


내 인생 전체를 포도처럼 짜서 그 즙을, 아니 그 포도주를, 성수와도 같은 그것을 한 방울 한 방울, 내 그림자의 메마른 목구멍 안으로 떨어뜨리고 싶다. (...) 한 때 나였던 존재는 죽었다. 그것은 이미 부패가 진행 중인 몸에 불과하다. 나는 생이라는 포도를 짜내서, 그 즙을 한 숟가락 한 숟가락씩 떠서, 내 늙은 그림자의 메마른 목구멍 안으로 흘려 넣어야 한다. 눈먼 부엉이, 61, 64


헤다 아트는 '삶에 대한 욕망'과 '필연적인 죽음' 사이의 불일치 때문에 인간의 슬픔이 생겨난다고 봤습니다. [...] 좋은 문학이란 불안한 현실의 첨예한 모순을 빼어난 상징과 은유로 고발하면서, 동시에 소설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숙명을 압축하는 글이 아니던가요. 한 시대를 작동시키는 정신의 심장을 차가운 메스로 도려내면서, 모든 시대의 살갗에 접촉하며 불에 덴 듯한 뜨거움을 주는 문학이야말로 참된 문학일 것입니다. 330-331





*그럼, 시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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