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워크숍 노트 #4
홈 Home과 하우스 House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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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대해 쓰는 일,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가족에 대해,
그 가족의 구성원이기도 한 자신에 대해 쓰는 일.
이소호의 시집 <홈 스위트 홈>을 읽으며 우리는 불편하지만 가장 피부에 깊게 새겨진 이야기들을 썼다. 어떤 문장은 너무 짧거나 주어가 없었고, 어떤 문장들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자주 포장지를 몇 겹씩 벗겨내야 했다.
지나치게 몰입하고 진심으로 자신을 바쳤던 대상에 대해 골몰했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부담스러울, 그러나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구성이며 주제로 보이는 이야기에 대해. 이소호의 시는 아름다운 문장, 완성도 있는 문장으로 정면 승부하는 시는 아니지만 비판적 자기의식이 뿌리 깊게 배어있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시인은 누구보다 화자와 닮아 있었다. 최근 다뤘던 문보영, 박참새, 김선오, 김리윤은 '시인=화자'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듯했지만 이소호는 생물학적 자아와 시인적 자아가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독함을 보였달까.
이소호는 홈 Home과 하우스 House를 구분한다. 가족인 것과 가족다운 것을 구분한다. 화자가 가부장제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면서 심지어 공모자이기도 함을 드러낸다. 단순 자기 폭로에서 자기 패러디로 넘어가면서 '가족과 나'에 대해 입체적으로 바라본다. 이소호는 개인의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 언제나 좋은 문학이 그러하듯 - 독자는 제 가족과 그 안의 자신에게로 시간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가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하여 미래로까지.
가부장제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는 시인만큼 우린 여성적 글쓰기에 대해 꽤 오래 이야기했다. 가부장제, 페미니즘, 그 외에도 너무 자주 회자되어 이제는 효용도 없이 남루해진 이야기들. 하지만 해소된 적 없이 산재한 슬픔들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제 세상이 많이 변했어. 근데 아직도 이런 얘기를 한다고? 아직도 그 소리야?'라고 할 만한 이야기들.
남성과 여성이 타자를 인식하는 방식이 다른 만큼 그들의 글쓰기 방식도 다르다. 남자 작가의 문체에 길들여 있다면, 여성작가의 글이 더 잘 익힌다면 우린 같은 세계를 다르게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반화할 순 없지만 성별 간 차이는 화자가 목소리를 내는 방식의 차이로도 이어졌다. 그건 어느 쪽이 더 낫다기보다는 '다른' 방식이다. 안으로 파고들며 성찰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쓰는 여성적 글쓰기에 반해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인식하는 쪽보다는 외부세계로 전진하는 남성적 글쓰기에 대해.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때론 그 범주를 넘나들기도 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모방을 넘어 나만의 구조를 만들어내야 하지만.
살면서 어쩌다 어른이 되었고 날 것의 기억은 겹겹이 포장되었다. 이해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살기 위해서. 하지만 우리는 시문학 속에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목소리들을 꺼내놓는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의 개소리 말고 중요하고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의 목소리. 불편한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다. 자꾸 포장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망설인다. 피해자로 남고 싶은 욕심도 올라온다. 하지만 기억도 제 편한 대로 편집되듯, 이소호의 글이 가진 자기 훼손성에서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