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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Mar 23. 2019

서울 을지로 쌍화차

“쌍화차의 노른자는 터뜨리면 안 돼”

       

을지다방 카운터

  “어서 오세요! 혼자 오셨어?” 여주인은 기분 좋은 ‘솔’ 음색으로 반긴다. 공구가게가 줄을 선 을지로 3가의 오래된 다방. 좁은 계단 끝의 나무문을 열면 석유난로의 훈훈한 냄새가 먼저 반긴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주황색 가죽의자와 낡은 테이블, 오래된 조명만큼 나이 든 텔레비전, 손때 묻은 카운터(이 물건은 이제 구하기도 어렵다.), 물을 끓이는 주전자의 수증기. 운이 좋으면 빛이 들어오는 창가자리에 앉을 수 있다. 시간이 멈춘 이 공간, 그러고 보니 색깔 테이프가 갈라진 유리창의 세월을 용케 붙들고 있었다.    


  35년 동안 다방을 운영한 박옥분(여, 64세) 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른 아침에 문을 연다. 

  “1980년대 말에 일을 시작했어. 나는 그때 이 일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어. 당시에는 건물마다 다방이 있었지. 그 당시는 다방이 굉장히 많았어. 처음에는 우리 식구들이 아홉 명이나 있었어. 주방 아줌마, 카운터에 아가씨도 있고, 배달 아가씨도 있었어. 당시에는 모두 유니폼을 입었는데, 내가 워낙 없이 살아서 아가씨들에게 검정치마에 윗도리는 파란색 티, 빨간색 티를 계절마다 사다 주었지. 겨울에는 평화시장에서 잠바를 쫙 사다 입히기도 했어. 배달 나가면 추우니까, 노란색 잠바. 그래서 을지다방은 옷만 보면 다 아는 거야. 예쁜 노랑, 빨강도 예쁜 빨강, 그러면 괜찮거든. 명절 때는 한복을 입었어. 그 당시 주변에서는 아가씨들 한복 입은 거 보고 명절이구나 하고 알았지.”     


  근대의 다방은 예술인들이 모여 시대를 이야기하고 문화를 꽃피웠던 장소였다. 당시 동아일보의 한 기사에서는 “6·25 전쟁 이후, 1950년대에는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기개 높은 예술가들이 서울의 다방을 즐겨 찾았다.”고 시대의 풍경을 전한다. 

  

  지금은 자판기가 골목마다 서있고 입맛에 따른 다양한 커피믹스를 쉽게 살 수 있다. 게다가 정수기가 사무실마다 설치되어 있고 세련된 커피 전문점들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다방을 찾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커피 배달문화를 사라지게 한 이유라고 여주인은 설명한다. 일부분은 납득이 된다.      


  주문이 들어오면 먼저, 쌍화액을 끓인다. 신선한 계란은 흰자를 걷어 노른자를 조심스럽게 분리한 후, 대추, 잣, 땅콩 등의 견과류 위에 살포시 올린다. 견과류는 좋은 것을 사다가 직접 말리고 썰어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가 지켜온 신조(信條)이다.

  검은빛 쌍화차가 노란 알을 품었다. 그녀는 친절하게 쌍화차를 먹는 방법을 알려준다. 





  계란을 풀면 안 돼.
차에 살짝 담갔다가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서 톡 터뜨려.
계란 맛이 아닐 거야.
노른자는 비린내가 안나. 드실 만하지?


  탱글탱글한 노른자는 쌍화차의 열기에 표면만 살짝 익었다. 쌍화차 향을 머금은 따듯한 노른자가 고소하게 입안에 퍼진다. 하루의 건강을 마신 셈이다.     




  35년 전, 커피 값이 300원이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특급 쌍화차를 담아온 쌍화차 잔은 이제 겨우 3개 남았다. 커피용 스푼과 쌍화차용 스푼도 몇 개 남지 않았다. 이곳을 찾는 어른들의 추억을 간직한 그것을 함부로 바꿀 수도 없고 그만큼 마음에 드는 것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커피 스푼과 쌍화차 스푼

  필자에게 가르쳐 준 비밀이 한 가지 더 있다. 커피 맛은 적정한 물의 온도와 정성, 비율이 중요한데 ‘둘, 둘, 둘’이라고 한다. 커피와 프림(creamer), 설탕의 비율이다. 알고 있었지만 엄청난 비밀을 들은 듯이 손뼉을 치며 맞장구를 쳤다. 그녀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삶도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비율이 적당히 둘, 둘, 둘, 둘이었으면 좋겠다.                    

을지다방 주방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역사문화유산, 세월의 흔적, 근대문화역사유산' : 근대신문 속 음식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


박옥분(여, 64세) 씨가 운영하는 을지다방에서는 오래된 추억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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