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온천역에서 가까운 온양온천 전통시장은 약 오백 개의 상점이 있다. 거기에는 만두와 호떡, 꽈배기 등의 먹거리와 떡집, 손 두부집, 유명한 소머리 국밥촌도 있다. 피로했던 한 주를 잊기 위해 따듯한 물에 온천을 하러 왔다면 이곳은 마음의 여유를 재충전할 수 있는 장소이다.
먹거리 상점이 즐비한 골목에는 꼬리가 긴 줄이 눈에 띈다. 출입구 앞에서 설설 끓고 있는 솥에서는 보란 듯이 흰 수증기를 내뿜는다.
도마 위에 찰진 반죽이 치맛자락을 펼치자 그 위로 거침없이 날리는 뽀얀 밀가루
도마 위에 찰진 반죽이 치맛자락을 펼치자 그 위로 거침없이 날리는 뽀얀 밀가루. 길고 튼튼한 홍두깨로 반죽을 말아 꾹꾹 눌렀다가 쓱쓱 쓸어낸 후, 다시 반죽을 탁! 펼쳐 이리저리 접어서 서걱서걱 칼질을 해댄다. 고르게 칼질을 당한 반죽은 죽은 듯이 엎드려있다. 그것도 잠시, 주인장은 단번에 가지런했던 면발을 풀어낸다. 눈을 뗄 수 없는 손놀림이 한 편의 무술(武術)과 같다.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줄을 선 목적을 달성해야만 한다는 의기(意氣)가 더욱 높아진다.
목소리 낭랑한 여주인은 식당 안에 자리가 남게 되면 그 즉시, 줄 서있는 사람들에게 인원수를 물어본다. 칼국수 빚고 끓이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손님의 의지까지 확인하니 이보다 확실한 마케팅이 있을까?
“혼자 오셨어요? 아버님 혼자 오셨어요?”
혼자 식사를 하려고 온 사람은 큰 횡재(橫財)라도 한 듯 덩실덩실 춤을 추며 들어간다.
“몇 분이세요?”
이번에는 빈 테이블이 생길 때 하는 질문이다. 무엇을 먹겠냐는 질문이 아니라, 인원수를 먼저 묻는 이유가 있다. 이곳의 메뉴는 손칼국수와 손수제비, 잔치국수가 다인데 대체로 손님들은 손칼국수를 주문한다. 인원수가 확인되자 주인장은 신속하게 칼국수 준비에 돌입한다. 멸치의 맛과 향이 깊이 우러난 국물에 잘 썬 면발을 삶는다. 자리에 앉은 지 5분도 안되어 애호박과 김, 파를 올린 칼국수가 나온다. 양이 정말 많다. 행여, 그 양이 적다하여 곱빼기를 시키고자 한다면 삼천오백 원에 천 원만 추가하면 된다. 가격도 몹시 착하다.
손칼국수는 더울 때는 이열치열(以熱治熱) 열을 식혀주고 엄동설한(嚴冬雪寒)에는 언 몸을 녹여주니 사계절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필자는 얼었던 손을 비비며 그릇을 감싸 안고 국물을 홀홀 마셨다. 여기에 양념장을 빼놓으면 섭섭하니 매콤한 고추를 썰어 넣은 양념장을 한 숟가락 섞어야겠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동원하여 쫄깃하고 굵은 면발을 연신 입으로 가져간다. ‘문밖에서 안을 향해 있는 저 수많은 눈들과 마주쳐서는 안 된다.’고 외치면서 말이다. 그렇게 손칼국수 그릇의 바닥을 보고 일어섰다.
전통시장의 골목에는 시장의 역사를 벽화로 그린 곳이 있다. 낡은 벽은 변화된 시장의 역사를 들려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고추전과 된장전, 농약가게, 깡통골목. 오래된 골목을 두고 옮기려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그때 필자를 향해 한 아주머니가 묻는다.
“식사는 하셨수?”
현대인들이 결핍의 시대를 산다고 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시장 사람들의 정(情)이다. 이리도 다정하게 물어보면 거절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이 마케팅 전략이라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