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식사(食思)에 집중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만남이 한데 섞여서 식사가 일이 되는 경우가 아닌, 오롯이 음식을 즐기는 시간.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식탁 위의 나물반찬의 이름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하면서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까지 살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울의 서교동 주택가에는 열 평 남짓한 돼지곰탕집이 있다. 2017년에 창업 후, 짧은 기간에 유명해진 옥동식 돼지곰탕 전문점이다.
“15년 동안 요리사 생활을 하며 지치고 힘들었던 어느 순간에 ‘식당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달 시행착오를 거쳐 메뉴를 완성했고 식당 창업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3개월 동안 하였습니다. 직원 없이 혼자 운영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한 가지 메뉴로 운영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테이블이 아닌 바(bar) 형태의 테이블이 필요했고 좌석도 열석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음식을 만든 사람이 직접 서비스를 하면 그 음식에 대한 가치를 손님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만든 사람이 직접 서비스를 하면 그 음식에 대한 가치를 손님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옥동식(남, 46세) 대표는 식당 운영의 효율성을 강조한다.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은 음식의 맛과 영양은 기본이고 자원관리와 고객 서비스, 수익성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이 공간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돼지곰탕이라는 한 가지 메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현재의 운영시스템은 당일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여 식재료의 원가 관리가 수월하다는 이야기이다.
식당 자리가 열 석, 자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맛을 즐기기 위해 찾는 손님들이 꽤 많다. 식당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기대감은 조바심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으로 들어가면 밖의 분위기와 다른 평온하고 여유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긴 바를 따라 몇 명의 손님은 어깨를 맞대고 재즈 음악 속에 묻혀있고 필자의 옆에 앉은 젊은 연인은 잔술을 부딪치며 소곤거린다.
오렌지 빛의 조명 아래, 따듯한 보리차와 고추지 다짐, 김치 그릇이 차려졌고 수저받침 위에 수저가 가지런하게 놓였다. 곧이어 놋그릇에 담긴 주인공이 등장한다. 잠을 자던 밥알들이 얌전하게 돼지고기 밑에 눌려있다. 그 위에 송송 썬 파를 보기 좋게 올렸다. 필자는 관리하기 어렵다는 놋그릇을 사용하는 주인장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국밥 한 그릇이라도 예(禮)로써 대접하고 싶었던 것이다.
국밥 한 그릇이라도 예(禮)로써 대접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탕을 파는 식당에서는 설설 끓는 곰탕의 온도를 뜨끈하게 유지하기 위해 오지그릇에 담아낸다. 옥동식 대표가 생각하는 그릇에 대한 선택 기준은 이와 다르다. 정성껏 만든 국밥의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너무 뜨거워서도 차가워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좋은 재료로 만든 좋은 그릇에 음식을 담아서 손님을 대접하고 싶었다.
“뚝배기는 뜨거운 국물에만 신경을 쓴 것 같아요. 뜨거우면 맛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미각은 온도에 따라 맛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데요, 따듯한 국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적당한 온도는 60도에서 65도라고 해요. 돼지곰탕을 손님에게 서비스할 때 65도 안팎을 유지할 수 있는 그릇이 유기그릇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토렴을 하는 이유도 그 온도를 유지하기 위함이죠.”
따듯한 국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적당한 온도는 60도에서 65도라고 해요. 돼지곰탕을 손님에게 서비스할 때 65도 안팎을 유지할 수 있는 그릇이 유기그릇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돼지국밥이 아니라 돼지곰탕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돼지국밥처럼 내장과 뼈를 사용하지 않고 국내산 흑돼지(버크셔 K)의 앞다리와 뒷다리 살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품종은 잡내가 적고 아미노산이 많아 감칠맛이 풍부해 국물요리에 좋다. 사용하는 조미료는 단지 소금뿐이다. 투명하고 맑은 국물은 무색무취(無色無臭)의 담백함만 남았다. 얇게 저민 살코기는 쫄깃하고 부드럽다. 만약 반찬이 필요하다면 고추지 다진 것을 고기 위에 조금 올려 깊은 젓갈 향을 음미해도 좋다. 고추지 다짐은 새우젓과 소금, 고추를 섞어 일주일 동안 발효한 것을 다져서 만든다.
요즘은 혼자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곳에서 혼밥을 할 때는 남의 시선에 부담 갖지 않고 수줍어할 필요도 없다. 나 홀로 우아하게 앉아 돼지곰탕의 맛에 온전히 빠지면 된다. 향긋한 보리술 한 잔을 말벗으로 앞에 두어도 좋을 터이다. 아무도 그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도움 주신 분]
옥동식(남, 46세) 대표의 ‘옥동식(屋同食)’은 2017년에 문을 열었다. 국내산 흑돼지(버크셔 K)의 앞다리와 뒷다리 살로 돼지곰탕을 만든다. 그는 좋은 재료에 대한 욕심이 많고 손님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셰프(chef)이다. 그래서 이곳은 혼밥을 먹어도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