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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Mar 15. 2020

여럿이 먹는 모리국수는
재료를 많이 넣고 불어야 맛있어

구룡포 까꾸네 모리국수

        

  겨울을 나는 구룡포는 한적하다. 구룡포 항 근처의 공용주차장을 지나면 우체국과 근대역사문화의 거리가 있고 그 너머에는 구룡포 공원이 있다. 이곳 전설에 의하면 오랜 옛날 비바람을 뚫고 열 마리의 용이 승천하다가 한 마리가 바다에 떨어졌다. 그 이후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곳이라 하여 구룡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용이 살던 곳이라 그럴까,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동해안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고 어른들은 이야기한다. 



  한때는 생태, 꽁치, 아귀, 오징어, 게가 구룡포 어판장에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다. 고단한 뱃일이 끝나면 수협 직원과 중매인들은 수협 앞에 모여 그 날 잡은 생선과 국수를 넣고 얼큰한 탕을 끓여먹었다. 그렇게 시작한 식당들이 하나둘씩 모여 구룡포의 명물인 모리국수 골목이 되었다. 누가 먼저 시작하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래도 개중에 가장 오래되었고 맛있다는 집이 있어 찾아가 보았다.      


옛날에는 구룡포가 젤 살기 좋다고 그랬다.
오징어, 꽁치가 산더미루 치쌌어.
그때는 우리 같은 사람 가가
막 소쿠리로 갖다 먹고 그런 시절이었지.


  까꾸네 모리국수 이옥순(75세) 할머니는 오십일 년째 모리국수를 팔고 있다. 스무 살에 경주에서 시집올 때만 해도 구룡포에 가면 쌀밥만 먹고 잘 살 줄 알았다. 아이를 낳고 살 길이 막막해지자 뱃사람들을 상대로 국수를 삶았다.   


  “옛날에는 구룡포가 젤 살기 좋다고 그랬다. 오징어, 꽁치가 산더미루 치쌌어. 그때는 우리 같은 사람 가가 막 소쿠리로 갖다 먹고 그런 시절이었지. 일 끝나고 중매원(중매인), 바닷가 사람들이 오징어도 놓고, 비린 거 좋아하는 사람은 꽁치도 갔다 여코, 낙지도 여코, 뭐 골뱅이도 여코. 그때는 내가 재료를 준비하는 게 아니야. ‘까꾸 엄마 안주 해주소. 술안주 하게요. 국수 해주소. 배가 고푸요.’ 이래가 주고 판잣집에서 시작했다.”     


  큰 아이는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골목에 내어 놓고 키웠다. 이름도 없이 변변치 못했던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눈이 똘망똘망한 아이를 보고, ‘까꿍 까꿍’ 어르며 귀여워했다. 큰 아이가 태어나면서 살림도 펴기 시작했고 까꾸네로 불리게 되었다.


  “원래 음식 이름도 없이 국수를 팔았거든. 그래 동네 중매원들, 수협 직원하고 한 솥에 여섯 명이 앉아가지고 ‘까꾸 엄마가 만들기는 하더라도 이름이 없으니까, 이거 여럿이 모디가('모이다'의 경상도 사투리) 먹으니까 모디 국수라고 하자.’ 그랬거든. 처음에는 모디 국수였는데 모리국수가 된 기야.”      


  당시에는 1인분에 얼마를 팔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고된 노동을 하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푸짐하게, 맛있게, 빨리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배가 들어와 어판장의 일이 끝나면 손님들이 몰려왔다. 그런데 연탄불에 음식을 조리한다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미리 생선을 손질해서 양푼에 담아 수북이 쌓아놓고 고무로 된 큰 그릇에 국수를 삶아 놓았다. 



  손님들은 사람 수가 많으면 큰 냄비를 선택하고, 수가 적으면 작은 냄비를 선택했다. 각자가 선택한 냄비를 연탄불이 있는 식탁에 얹어 놓고 손님들의 양대로 국수를 집어다가 넣어 먹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생태를 보기가 어렵지만 그때는 생태가 많았고 물메기도 많았다. 얼큰하고 뜨끈한 탕에 국수를 넣고 먹으면 식사와 안주로는 그만이었다.     



  모리국수는 계절에 따라 재료가 조금씩 달라진다. 아귀와 아귀 내장, 새우, 홍합, 콩나물을 주로 넣고 여름에는 홍합 대신 게를 넣는다. 먼저 아귀와 내장을 삶다가 새우와 콩나물을 넣고 시원하게 육수를 만든다. 다른 냄비에는 납작 국수를 삶는다. 생선이 다 익을 무렵 고춧가루와 파, 마늘 등을 넣고 붉은 국물이 우러나올 때 삶은 국수를 합친다. 살살 저어 한소끔 끓이면 생선 육수와 국수가 만나 뜨겁고 걸쭉한 막을 친다. 


  모리국수에는 생각보다 많은 재료가 들어가 있다. 그리 맵지는 않다. 먹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뜨거운 국수보다 아귀를 먼저 공격해야 한다. 칼칼한 양념이 배인 부드러운 아귀로 건조한 식도를 달랜 뒤, 토실한 홍합과 내장을 먹는다. 어느 정도 식으면 홀홀 국물을 마시면서 국수를 먹으면 되는데 천천히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리국수는 불어야 맛이 있기 때문이다.        


  재료를 끓여가 많이 넣으니 맛있지?
납작 국수는 불어서 호로록 넘어가야 맛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깜깜한 밤이 되었다. 할머니와 함께 세월을 견디며 자리를 지킨 골목식당, 작은 아이가 까르륵 거리며 골목을 뛰어간다. 양은 냄비에 따듯한 기억을 담아두었다가 다시 찾으러 와야겠다.  

                 


[도움 주신 분]          

까꾸네 모리국수 이옥순(75세) 할머니는 오십일 년째(2018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들이 도와주고 있지만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손님들을 위해 모리국수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 이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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