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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Feb 12. 2021

맵게 해 주소 하면,
찜갈비 한 양지기, 물 한 양지

대구 찜갈비


  태양초 고추의 꼭지가 노랗게 잘 말랐다. 입구에서 말린 고추를 다듬는 주인 할머니의 손길이 정성스럽다. 붉은 태양초 고추는 새벽이슬을 맞고 햇빛에 말리기를 반복하여 투명한 붉은빛이다. 건조기로 말린 건고추보다 태양초 건고추를 선호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대구 찜갈비 골목에는 원조란 이름의 간판이 없다. 100m 남짓한 거리에는 찜갈비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줄지어 섰지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입맛에 맞는 곳을 찾으면 된다. 찜갈비는 갈비찜과 달리 간장이 아닌 고춧가루가 주재료이다. 그래서 식더라도 그 맛 그대로 맛이 있다.


  “예전에는 갈비 값이 헐했습니다.
그래서 4번, 5번, 6번 갈비만 썼습니다.
그 부분을 가장 고급으로 칩니다.
저는 지금도 그 부분 아니면 안 됩니다.
씹을수록 구수하고 단맛이 납니다.
그때는 손도끼로 갈비를 끊다 보니까 뼈가 날카롭게 끊겨서
손님들이 입천장을 다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짜가운 거 한 번 먹으면 낫는다’ 했지요.”


  박문일(남, 67세)씨의 찜갈비 이야기는 4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는 열두 평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부엌자리를 빼고 나면 상 2개 펼칠 만한 공간이었다. 반찬이라고는 깍두기와 상추가 전부. 그래도 사람들은 잘 먹고 간다고 했다. 힘든 일 하고 난 후, 술 한 잔과 매운 찜갈비 한쪽이면 그 날 고생한 보상을 다 받았을 터이다.



 ‘야야, 니, 음식을 이리 가 돈 받나’ 하셨습니다.
어른이 오시는 날은 부엌부터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장사했습니다.



  “제가 1992년부터 어머니의 가업을 받아 시작했드랬습니다. 1985년에 찜갈비 골목이 생기기 시작했고 당시는 찜갈비 집이 16개나 되었습니다. 어머니 성격이 급하셔서 ‘찜 2인분 내라’하고 세 걸음 걸으시고는 뒤돌아서서 ‘찜 안 나오나’ 하면서 부엌에 대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오십니다. 제가 만든 찜갈비를 잡숴보시고는 숟가락을 내 던지셨습니다. ‘야야, 니, 음식을 이리 가 돈 받나’ 하셨습니다. 어른이 오시는 날은 부엌부터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장사했습니다.”


  아무리 고깃값이 오르고 재료비가 비싸다 하더라도 한우의 좋은 부위만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손님들의 입맛은 점점 무서워졌다. 음식으로 장난을 치는 일은 더욱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35년째 도맡아 주방을 보시는 할머니와 한 식구가 되었다. 



  주방에는 오래된 항아리 두 개가 있다. 집에서 담근 간장과 태양초 고춧가루가 담긴 항아리이다. 주방할머니는 미리 익혀둔 갈비 위에 간장 한 숟가락, 고춧가루 한 숟가락, 마늘을 듬뿍 넣어 속속들이 간이 배이게 한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찜갈비를 접해본다. 처음 맛은 맵고 짠, 양념 맛이다. 씹을수록 쫄깃한 갈빗살이 부드럽게 혀에 감긴다. 몇 번의 젓가락질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혀끝에 불이 나기 시작한다. 이때 상추쌈을 싸 먹거나 밥과 콩나물을 넣고 비벼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울 신(辛)의 맛을 호되게 겪는다. 


  주인할아버지는 지금 먹는 것은 매운 게 아니라면서 물 한 양지기를 가져다주신다.

  “지금 먹는 기 어디 매운기가. ‘맵게 해 주소’하면,
찜 양재기 한 개 갖다 놓고 물 양재기 한 개 갖다 놓고 먹는 기라.
반찬도 우리가 클 때는 고기를 먹으러 가면
고기로 배를 채우고 속이 좀 느끼하다 싶으면
밥을 한 숟가락 딱 먹는 기야.
 나는 그리 교육을 받으며 커왔다.”     

  

  감히 찜갈비를 다른 어느 매운 것과도 비교하지 말아야겠다. 콧등과 이마에서 땀을 쏟고 나면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고통 뒤에 찾아오는 환희라는 것일까?     


[도움 주신 분]

실비집 박문일(남, 67세)씨는 1992년부터 어머니의 가업을 이어 가족과 함께 2대째 운영하고 있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983?_ga=2.41508450.1351539288.1613098536-477163452.1613098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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