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박하며화려한 Feb 12. 2019

게으른이의 안식

먹는 생활

 일년이 부지런을 떨며 지나가고 있지만 요즘의 나는 한없이 게으르다. 같은 패턴으로 흘러가는 하루의 반복을 보면서 시간에는 앞뒤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틀어보는 텔레비젼에서도 방영되는 영화들은 어제도 보았던 영화이고 채널은 많지만 인기많은 드라마 몇 가지가 돌아가며 나온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기분이 더 안좋아진다. 현대인들에게 만연한 정신질병인 우울증에도 활동적으로 사는 것이 좋은 영향을 준다고 했지만 스트레스가 몇번 겹치면 꼼짝도 안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럼 현실에서 도망가게 되는데 잠을 자거나 집안일을 미룬다.

 화가난 부분은 자꾸 생각의 한쪽을 묶어둔다. 결혼전 직장에서 받던 스트레스는 시원하게 울거나 다른것으로 털어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에 가족들로 받는 상처나 자력으로 거절할 수 없는 부분들 고쳐지지 않는 것들이라 계속 마음의 짐으로 남아 무겁게 들어앉아 있었다. 타인이 주는 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주는 감정들이 끊어내기도 어렵고 해결책을 찾기도 어렵다. 생각을 비워내는 것을 도와주는 책들도 이번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평정심을 잃고나니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글도 쓰여지지 않았다.

 직장이 있는 주부도 없는 주부도 결혼 후에 오는 갈등들은 마음을 자유롭게 해주지 못한다. 일하는 친구에게 시댁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얼마간 유지되냐고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직업이 있으니 잊을 수는 있다고 답했다. 일하는 동안만. 퇴근과 동시에 다시 그 기억은 살아난다고 했다. 결혼과 함께 생겨난 가족은 거절할 수도 딴생각을 하면서 무시할 수도 있는 상사가 아니다. 자신을 지키며 쿨하게 대처하는 데에는 현명함과 또는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대범함이 필요하다.

 노인과의 생각의 차이가 극명하게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나의 시부모님 두분은 노인이시다. 그것도 전쟁을 겪으신 세대. 또래 친구들의 시부모님들과는 차이가 많이 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이해하면 되지만 마음은 생각만큼 단순하지가 않았다. 답답하고 화가 날 때가 많고 알 수 없는 요구를 해오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더욱 생각의 차이는 벌어지고 있다. 죽음을 향해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은 어머님 아버님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고 살아야 얼마나 살겠냐는 전제로 자식들을 곤란하게 하는 요구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친정 엄마가 겪을 만한 일들을 나에게서 본다고 말했다. 힘들 때마다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선택한 상황이고 받아들여야 했다.

 자유롭게 풀어놓은 시간들은 오히려 생각이 정리되게 도와주었다. 해결보다는 마음을 달래준 것 같다. 손에 생겼던 곪을거라고 생각한 상처도 물이 닿는 시간이 줄어드니 새살이 돋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다시 시작하고 쌓아놓았던 운동화들도 세제를 푼 미지근한 물에 담궈놓았다. 며칠만의 방황이 끝이 났다. 때로는 무질서가 질서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낫지 않을 줄 알았던 상처도 시간이 쌓이면 낫는다. 생각할수록 화가나는 기억이나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내릴 수 없었던 판단들은 오히려 가만히 두고 기다려주었을 때 해결이 된다. 아픈 마음도 달궈진 전기장판과 귤 몇개면 위로가 된다.

작가의 이전글 야식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