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생활
참고 견디는 밤들이 쌓여서 얼마나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때일수록 인간은 이성보다는 감성, 본능에 더 끌리고 충실하고픈 욕구도 크다는 것을 느낀다. 의지가 약해질 때면 강제로 의식을 없애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마치 전원을 꺼버린 컴퓨터처럼. 하지만 점점 본능의 힘은 나를 잠식해버리고 눈을 감고 잠들려 하면 무의식의 문턱에서 자꾸 나를 잡아끈다.
이것은 깊어지는 밤이 될수록 더더더 돋아나는 나의 식욕에 대한 이야기다. 오히려 낮에는 절제할 줄 아는 차분한 요조숙녀 같은 본능이다. 밤 열 시가 지나면 멈추지 못하는 야생마처럼 거칠어지는데 그 시간이 가장 심한 것으로 보아 '야식욕'으로 정정해서 불러야 될 듯하다. 어젯밤에는 심지어 잠이 들어 넘어가려는 시점에 눈이 번뜩 떠졌다.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하면서 일어났는데 분명 배가 고파서 꼴깍 넘어가려던 차였을 것이다. 어둠 속을 걸어 나가 식빵 두장을 먹은 후에야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
어떤 작가는 책에서 프랑스 여자들은 식욕이 불어난다 싶을 때면 파를 끓여 그 물을 몇 번에 걸쳐 마신다고 말했다. 하루 정도 마시며 공복의 시간을 갖는다고. 요즘의 나는 배고플 때 손이 떨리고 마음이 급해지는 증상이 있어서 그런 차분한 방법으로 몸속을 비우지는 못할 것 같다. 밥을 꼭꼭 씹으며 맛을 충분히 음미하는 식사를 하면 충분히 즐기는 식사시간이 되고 과식도 방지한다던데. 그 방법을 알려준 뭇 다이어터들과 다큐 프로그램에 묻고 싶다. 식사 때 과식은 안 했는데 그럼 밤에 배고픈 것은 어떻게 하나요.
밤이 될수록 정신이 명료해지는 것은 야행성인 탓만은 아닌 것 같다. 뱃속이 비워지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고3 때 담임 선생님께도 들었었고 고된 수행에 정진하는 승려분들도 책을 통해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안 자고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프랑스 여자들처럼 파는 못 끓여먹을지언정 따뜻한 차 한잔으로 마음을 달래 본다.
따뜻한 물이 뱃속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동안 진정 나의 허기는 어디서 오는가 생각해본다. 분명 만족할 만큼의 식사를 매끼 하고 있고 낮에는 활동량을 늘린다는 타협 안에서 간식도 종종 허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밤이 되면 식사 따위 공급해준 적 없는 몸인양 구는 이유는 무엇일까. 먹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아잔 브라흐마 스님께서는 진정한 자유는 욕망으로부터의 자유이지 욕망의 자유가 아니라고 하셨다. 즉 자유는 현재 나의 자리, 위치, 상태 등에 만족하는 것이라고. 아침마다 체중계에 올라가 숫자로 내 몸을 판단하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출산하고 엄마가 된지도 오래된 지금 아직도 외모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먹는 양을 조절하는 이유는 건강이 목적인가, 아름다운 몸매가 이유인가. 겉모습에 치중하던 마음이 욕망을 불러오고 자유를 억압했던 것은 아닐까.
적당히 먹는 것은 분명 건강에 도움이 된다. 늦은 밤에 먹고 잠드는 행동은 식도염을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간과해온 사실은 날씬한 몸매가, 자기 관리라는 강박이 오히려 더 먹고 싶은 마음들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더 큰 욕망에 의해 욕망을 생산하는 삶. 현명한 선택은 그 연결고리들을 과감히 끊어내는 것이 아닐까. 먹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가 사람을 이렇게도 심오하게 만들 수도 있구나 깨닫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