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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Feb 13. 2019

목공 후기

만드는 생활

 좌우명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지만 안 해본 짓을 해보며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단점을 극복하는 법을 생각해보다가 내린 결론은 가던 길의 반대로 가보자였다. 낯을 많이 가리는 부분은 고치고 싶은 단점 중에 하나다. 불편하다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살 수는 없고. 마음이 내키는 것에서 반대로 가다 보니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를 하나둘 만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고 굳어있던 마음은 한결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그런 이후로 반대로 가는 법을 깨달은 나는 안 해본 활동들도 해보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올해의 시작은 원대이 목공수업으로 안 해본 활동들의 첫발을 내디뎠다. 자력으로 사는 삶에는 관심이 있지만 목공에는 관심이 없었다. 손을 다칠 수 있는 작업도 부담스럽고 힘을 많이 쓰는 일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초등학생 때 국기함 만들기를 해본 것이 내가 해본 유일한 목공 작업이었는데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내손을 거친 국기함은 아귀가 맞지 않아 뚜껑이 헐떡거렸다. 

 에 가는 토요일은 즐거웠다.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서 광교산으로 향했다. 햇살이 드는 비닐하우스는 의외로 따뜻했고 목공 작업 도중에는 더워서 문을 열어야 할 정도였다. 과연 식물이 이 안에서 살아갈만하다. 광합성을 하는 기분으로 설명을 듣고 작업할 나무를 찾으러 나갔다. 침엽수가 조각하기에는 더 나았고 넓은 잎 때문에 활엽수인 줄로만 알았던 은행나무는 사실 침엽수였다. 자른 지 얼마 되지 않은 필요 없는 나무를 찾아 두리번대다가 손목보다 얇아야 된다는 선생님 말씀대로 적당한 크기의 벚나무를 찾았다. 톱으로 자른 단면은 매끈했고 아직 촉촉했다. 껍질을 벗기고 틀을 잡아가는 동안 부드럽게 깎였다. 

선생님들이 깎아놓으신 목공 작품들
깎을 나무를 구할 때에는 쓸모없이 잘린 나무를 구하던가 주인이 있을 때에는 허락을 받고 얻어와야 한다.

 숟가락을 만들 생각으로 갔지만 움푹 파내는 작업이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잼 나이프를 만드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숟가락을 만드는 팀은 도끼로 나무 단면을 잘라야 했지만 잼 나이프는 칼로 파내면 되었다. 옹이라고 불리는 볼록 나와있는 부분들은 손으로 깎기가 힘이 드는데 그대로 두는 편이 오히려 멋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선택한 나무도 옹이가 있어서 그 부분들은 조금만 깎아 울퉁불퉁한 손잡이를 만드는 것으로 구상했다. 오랫동안 집중하는 일은 살면서 점점 사라지는 일이다. 나무를 깎는 일은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는 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무아지경으로 빠져든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들이 피로해져서 나타나는 통증도 작업이 끝나고 저녁 무렵에 나 돼서야 느낄 수 있었다. 

힘들게 깎아낸 완성품을 놓고 소감을 나누었다. 

 나무를 깎는 일은 우리들의 사는 모습과 비슷했다. 잘 뻗어나가는 듯하다가도 다시 막히는 시기들처럼 나무도 처음 깎아나갈 때는 칼이 잘 밀리다가 모양을 잡아가면서부터는 힘이 들었다. 다듬는 과정은 요령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들의 작품과 비교해가며 마음이 급해지면 칼은 깊이 박혔고 표면에 거친 부분들을 남겼다. 얇고 넓게 밀어 깎아내야 하는데 한쪽으로 가다 보면 어느새 결이 파이고 다른 쪽으로 다시 다듬기를 반복해야 했다. 모든지 내 것에만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마음은 급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성별도 연령도 다양했다. 경력자도 초보자도 있었다. 공방 활동을 하시는 분도 집에서 혼자 취미로 깎아보신 분도 있었다. 그리고 나무를 처음 접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자의 나무를 깎았을 뿐인데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의 활동은 서로의 낯 섬을 덜어주었다. 완성품을 테이블에 올리고 사진을 찍고 소감을 나누면서 서로 상대방의 것이 더 멋지다고 칭찬을 했다. 집에 갈 때에는 어느새 서로의 귀갓길을 묻고 있었다. 걸어 나가는 사람들 앞에서는 차들이 끊임없이 멈춰 섰다 출발하기를 반복했고 산 입구까지 동승할 것을 물었다. 나무 깎는 하루가 지난 우리는 뿌리가 이어진 나무였다. 

내가 만든 잼 나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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