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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Oct 20. 2019

우울을 받아들이는 방식

일상생활

 모든 꾸준한 것이 좋다고 하는데 약 먹기의 경우도 특히 그렇다. 증상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중단한 약 복용은 다시 불안함을 끌어들이는 데에 한몫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던 병원은 두 주에 한 번으로 텀이 길어졌고 꼬박꼬박 열심히 청구하던 보험은 나중에 몰아서 한꺼번에 처리할 양으로 쌓여있다. 하루 한 번 저녁에만 복용하고 외출 시 필요하면 복용하던 약은 하루 삼세번으로 늘어났다.

 의사 앞에 앉으면 사실할 말이 없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고 나 또한 나의 몸을 정의할 수 없음에 이 증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떠셨냐는 질문에는 나아지는 무언가가 없는터라 그냥 그렇다는 대답 밖에는 할 수가 없다. 요즘의 나는 의욕이 없다. 삼시세끼 해 먹는 밥은 엄마로서 해야 하는 가장 기본 의무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움직이지만 그 외의 시간은 잠으로 보내고 있고 누워서 핸드폰을 보다가 꿈속에 있기 일쑤다. 딱히 무엇에 의해서 졸린 것은 아니고 다만 꿈을 연속적으로 꾸는 터라 꿈속에 있는 시간 동안은 잠시 다른 세계에 가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잠을 잔다. 두발을 움직여 밖을 나가는 것은 겁이 나서 대신에 나는 그렇게 시공간을 돌며 외출을 한다.

 과호흡으로 시작된 이 불안 증상이 시작된 후로 엄마는 걱정이 많다. 부탁을 한 적도 없는 김치를 매번 만날 때마다 담아다 준다. 가끔 보내는 문자 한 통에는 항상 널 생각한다는 따뜻한 말도 잊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이런 애정 표현에 손이 오그라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불편감을 느끼는 성미는 그런 문자에도 '알겠어' 한 단어로 대답한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뻔한 염려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줄 몰라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황장애와 상당히 흡사해 보이는 '과호흡 증후군'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처음에는 체력이 떨어지거나 몸이 어디가 안 좋은 줄로만 알았다. 구급차를 부르고 싶은 상황을 두 번 겪고 난 후 숨이 막혀오던 기억은 두려움에 떨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다. 저녁마다 남편과 먼 거리를 걸어 다닐 정도로 괜찮았던 체력은 한순간에 떨어져 밤에도 걷다가 어지럼증을 호소하게 만들었다. 정신과 진료를 보고 간신히 해답을 받아낸 후에 왜 이런 증상이 생겼는지 생각해보았지만 이거다 싶은 이유는 없었다. 단지 과거부터 이어져온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썩어있는 부분만 존재했을 뿐. 당장에 자신을 괴롭히는 무언가는 없었다.

 마음속 빽빽이 적어 내려 간 글자들이 용량을 초과했을 때는 한 번쯤 지워줄 필요가 있다. 마치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포맷하듯이 나는 삶에 잠시 정지선을 그어놓았다. 남들처럼 바쁘게 시간을 쪼개며 살아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특별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온 삶도 아니지만 지금의 나를 돌려놓을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외출을 좋아하고 움직이기를 좋아했지만 마음은 알아서 먼저 움츠러들게 만들어주었다. 어딘가를 나가기 위해서는 반나절이 넘게 고민하다가 결국 누워서 하루가 가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해가 진 후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나가서 보는 깜깜한 하늘. 밥은 먹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수북이 쌓여있는 까먹은 초콜릿 껍질들을 보면서 이제는 어떻게든 힘을 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의 해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인 글쓰기를 하면서 자신을 떠밀어본다. 매일 하나씩 그림을 그리는 온라인 모임에 접수를 하고 4주간 작가가 진행하는 글쓰기 클래스를 신청한다. 먼 거리라서 고민만 했던 수업인데 이런 상태로 어떻게 찾아가 볼 수 있을까 겁이 나지만 일단 주머니에 들어있는 약을 의지 하며 어찌어찌 다니게 되겠지. 나이를 얼마나 먹어야 세상살이에 적응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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