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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Nov 01. 2019

83년생 김지영

일상생활

 친구와 둘이 영화를 보고 왔다.

 친구는 직장에 다니다가 올해 초 그만두었다. 일의 강도와 아이를 데리러 오갈 수 있는 시간을 감안하면 좋은 직장임에 틀림없었지만 자신이 가진 능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다수의 사람을 대하는 것에 지쳐있었던 그녀는 잠시 일을 그만두고 시험을 준비하길 원했다. 그리고 얼마 전 마지막 실기시험을 마쳤다. 얼마간의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 우리는 가끔 밥을 먹고 티타임을 갖기도 하며 극장에도 다녀오게 된 것이다.

 83년생인 여자 둘은 82년생 김지영을 보러 갔다. 뜨겁게 화제가 되었던 그 책을 나는 읽지 않았다. 세상은 그렇게 날이 선채 주부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열두 살이 많은 남편은 연애 때나 지금이나 동등한 자세로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고 나름의 어려움은 있지만 그것은 시부모님과의 세대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결혼생활의 어려움은 이겨낼 수 있었다. 또래보다 훨씬 앞선 출산을 경험한 나는 아기띠를 매고 혹은 유모차를 끌고 삼삼오오 극장으로 들어서는 엄마들을 보며 세상 참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아기랑 같이 볼 수 있는 상영관이 있다니. 그리고 아기를 처음 가졌던 13년 전의 자신을 떠올렸다.

 묵직한 꿰맨 배를 복대로 고정하고 수액줄을 주렁주렁 건채 병원에 있었던 그때의 나는 창밖을 보며 언제 저곳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이가 뱃속에 있던 열 달은 길었지만 그 이후의 성장 속도는 지겹도록 길었다. 옛날 엄마들은 여가를 어떻게 보냈을까. 아기를 데리고 어디 어디를 가볼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들의 답변은 해결할 길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높은 구두를 신고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던 나에게 해답은 없었다. 엄마이기에는 나는 아직 어린 여자였다.

 영화가 흘러갈수록 현실감 있는 몰입감에 이끌려 영화 시작 전에 팝콘을 다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손목에 감아진 아대나 집안에 어질러진 장난감들, 가게 안에만 들어서면 기다렸다는 듯이 유모차에서 악을 쓰는 아기의 모습 등 장면 장면이 예전의 기억들을 되살려냈다. 첫째와 둘째가 어리던 시절. 밖에서 밥을 먹다가 둘 다 화장실에 간다고 해서 가방을 두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짐을 다 팽개쳐놓고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했던 모습들. 결국 울면서 택시를 잡아타고 인형극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황급히 친정으로 달려갔던 기억들. 아. 아기를 동반한 상영관이 있는 시대를 살아도 육아의 생활이 녹록지는 않겠구나. 퇴색된 나의 기억들을 되짚으며 아기를 어르고 달래면서 영화를 볼 그녀들을 떠올렸다.  

 딸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 김지영의 친정엄마가 오열하는 장면을 보며 엄마가 떠올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울었다는 후기를 많이 보았지만 울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보게 된 영화는 결국 나의 현실과 오버랩되어 무릎 꿇게 만들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김지영.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는 나. 우리 딸 불쌍해서 어떡하냐며 우는 김지영의 엄마. 손가락이 오그라들도록 간질거리는 문자를 갑자기 보내고 집에 갈 때마다 김치를 한통씩 담가주며 몸은 좀 어때라고 물어오는 우리 엄마. 사위 앞에서 들릴 듯 말듯한 혼잣말로 할아버지 같은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느라 우리 딸 속이 얼마나 새까맣게 타들어갈꼬라고 흐려지던 말투까지. 어느새 김지영은 나이고 나는 김지 영인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영화 속 김지영은 결혼생활도 물론 행복하다고 말한다.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배려심 깊은 남편과 예쁜 아이를 보면 행복하다고. 나도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기 위해 아이 셋을 낳았고 마침 원하던 막내딸을 얻었다. 말이 잘 통하는 남편 덕분에 불행함 없이 살았다. 병원일은 힘들고 적성에 맞지도 않았던 터라 일을 관둔 것에 대한 후회도 없었다. 하지만 늘 이유 없는 허전함은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웃으며 사는 것이 잃어버린 나의 시간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가끔 물었다. 병원일이 다시 하고 싶냐고. 물론 아니라고 답했다. 이유 없이 빈자리가 마음 한구석에 생기는 이유는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예전의 나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무엇을 열심히 하고 그것으로 잘하는 부분들을 발견하고 가끔 밤을 새울 정도로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고 적성에 맞지 않지만 의외의 성과를 거두기도 하던 뜨거웠던 시간들. 그것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었다. 그것은 다시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으로 시작되어 정말 원하는 것을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귀결되었다.

 영화 속 김지영처럼 나도 다시 조금씩 글을 쓴다. 거창하지 않은 나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말들을. 영화를 보고 온 날 밤 꿈에 엄마가 나왔다. 너 하고 싶은 건 다 하라던 김지영 엄마처럼 나를 위로했을까. 아니다. 엄마는 글을 쓰는 나를 보며 조그마한 가게라도 꾸려가라며 불에 그을려 싸게 나온 상가 자리를 보여주었다.

 -아니 엄마. 만약에 내가 생을 마감할 때 이번 생은 엄마 때문에 후회만 남았다고 불평하면 어쩌려고 그래.

 나의 말에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네가 엄마를 원망하며 눈감는다 해도 엄마는 결국 너에게 현실적인 해결책을 보여줄 거야. 두 번 세 번 다시 태어난다 해도.

 씁쓸한 마음으로 잠에서 깼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인생을 살 것이다. 나는 고집쟁이 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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