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오후에 부쳐먹은 호떡 세장의 양은 꽤 많았다. 흐린 날씨에 아이들이 게임하는 소리나 들으면서 집안에 있자니 답답한 생각이 들어 정처 없이 나갔다. 늘 돌던 공원을 돌아 걷던 코스로 갈까 하다가 며칠 전 찾다 찾다 포기한 동네의 독립서점을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고 그쪽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머리에 무언가 차가운 것들이 톡톡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것. 공기는 차갑지만 겨울 치고는 춥지 않은 날씨가 만들어낸 결정체들이 우산을 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게 했다. 머리에 떨어지는 것이 싫어 우산을 쓰고 가는 것은 별거 아닌 것 중의 하나이지만 잠시 고민했다. 녹아 없어지는 눈 정도는 맞으면서 걸어가는 낭만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고 걷다 보면 옷에 배일 눅눅함이 신경 쓰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감성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처럼 나는 몇 초간을 서성였다. 그리고 서점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를 감안해서 그냥 우산을 쓰기로 결정했다. 가끔은 현실에 타협을 볼 필요도 있으므로.
요즘 나의 일상이 그렇다. 확실히 결정되지 못한 하루하루가 쌓여가는 기분. 이제는 현실적으로 살아보자고 직장에 원서도 넣고 면접에 입을 옷도 샀다. 십여 년 만의 외출 같은 어색한 마음으로 두세 군데 원서를 보내고 한 군데 면접을 보았다. 글로 밥을 벌어먹고 싶은 꿈은 잠시 넣어두고. 어떻게 지원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나는 마치 오랜 살림을 접고 이 일을 너무나 사랑해서 큰 결심을 하고 나오게 된 사람처럼 대답했다. 우습지만 현실의 밥벌이는 그랬다. 삼 교대를 피해 가면서 아이들을 깨우고 출근해 저녁을 차리러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시간에 일할 수 있는 직장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짧디 짧은 나의 사회경력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사회에 나가기 겁이 나고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겁이 난다.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주길 바라면서도 막상 전화가 오면 어쩌나 싶다. 당장 일을 하러 나오라고 하면 어쩌지. 일을 하다가 아이들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지. 중간에 전화를 해서 엄마 언제 오냐고 막내가 보채면 어쩌지. 일이 서툴러서 허둥대면 어쩌나. 아직 닥쳐오지도 않은 불안감이란 불안감은 다 끌어안고 사는 사람처럼 걱정이 많다. 그러면서도 맡겨만 주시면 성실함을 다하겠다는 이야기들을 그들에게 보낸다.
뿌옇게 막혀있는 하늘이 내 마음 같다고 여기면서 도착한 곳에는 서점이 없었다. 같은 자리를 돌고 돌았지만 역시 없다. 주소를 확인하니 맞게 찾아온 것은 맞는데. 매출 부진으로 영업을 정리하셨나 보다. 서점의 간판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속눈썹 연장 간판이 떡하니 걸려있었다. 책을 팔아 돈을 버는 삶을 꿈꾸며 가게를 여셨겠지.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나 보다. 마치 글로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다가 빛바랜 면허증으로 직장을 찾고 있는 나처럼. 집으로 가기 위해 돌아섰을 때에는 비처럼 녹아내리던 눈이 그쳐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