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팬더와 무술고수

by 편린

지난 일요일, 어린이날이라 시댁엘 다녀왔다. 할머니집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첫째가 그날은 하룻밤 자고 오겠다 했다. 마침 비도 오는데 그래, 그러렴 하고는 시댁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한참 게임 유튜브에 빠져 있던 딸을 넷플릭스로 돌려 세운 지 두 달 여. 이젠 제법 보고 싶은 만화영화를 고르는 손길이 익숙해 보였다. 어, 이거 엄마도 좋아하는 만화인데! 최근 새 영화를 개봉한 쿵푸팬더 시리즈가 눈에 띄었다. 영화와는 별개의 이야기로 풀어가는 모양이었다. 엄마가 좋아한다 하니 고민 없이 선뜻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딸. 덩달에 딸 옆에 앉아 엉뚱한 팬더의 모험을 구경했다.


오동통 포가 둔한 몸을 날렵하게 여기저기로 날려댄다. 줄 위를 아슬아슬하게 뛰어 넘는 장면을 보니 어릴적 보았던 무술영화들이 떠오른다. 당시 우리의 주말엔 종종 아빠가 빌려온 비디오들이 함께했다. 보통 중국이나 홍콩영화였고 그 중에서도 강호를 배경으로 한 갖가지 무술영화가 대부분이었다. 황비홍, 동방불패, 절대쌍교, 의천도룡기.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영화 속 그들은 따라하기도 힘든 멋들어진 무공이름을 외치며 칼을 휘두르고 나무 위를 날아다녔다. 어린 눈에 그 모습이 어찌나 멋져 보였던지. 영화를 보고난 다음이면 동생과 함께 빗자루에 쓰레받기를 모로 쥐고 화려한 몸부림을 쳤다. 그때만큼은 우리도 절대고수였고 빗자루는 깊은 동굴 속에서 찾아낸 숨겨진 명검이 되었다. 잠자리에 누워선 경공 고수가 되는 상상을 했다. 빠른 발걸음으로 가파른 절벽을 가뿐히 딛으며 하늘로 솟구치면 어떤 기분일까. 항상 이상한 힘을 얻어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곤 했던 내게 초능력보단 경공을 수련하는 것이 더 실현 가능성 있어 보였다.


소파 등받이 위에 올라간 둘째가 바닥으로 뛸 준비를 한다. 무서운 것도 겁나는 것도 없는, 자타공인 아들같은 딸. 순간 단전 저 깊은 곳에서부터 외마디 소리가 터져 나온다. 네 살 배기를 향한 그 목소리는 열린 창문을 타고 골목 끝까지 쩌렁쩌렁 울린다. 밤인데. 순간 아차 싶지만 이미 늦었다. 움츠러든 목 사이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애 둘 키우다 보면 경공은 못해도 사자후쯤은 가능해 지겠군. 어쩌면 이미 가능할지도.

숨겨왔던 능력들을 개방시키는 저 녀석, 내일은 어떤게 또 가능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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