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나도 어릴 땐 벨 누를 생각에 버스를 타는 날만 기다리곤 했다. 창밖 풍경은 뒤로한 채 빨간불이 들어오지 않은 벨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옆자리에 있던 엄마가 '이제 내려야 해'라고 말하면 누가 누르기 전에 빨리 버튼을 눌렀다. 내가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벨에 집착했는지, 마음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되진 않아서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서 간혹 벨을 누르고 싶어 하는 아이를 보면 물어보고 싶다.
포장한 만두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퇴근 시간 버스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가 얼마나 잔혹한지 알기에 가방 깊숙이 만두를 눌러 넣고 지퍼를 잠갔다. 앞자리에는 할머니와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앉아있었다. 할머니 어깨에 기댔다 안 기댔다 하는 양갈래 머리가 귀여웠다. 할머니가 주는 사랑은 부모가 주는 사랑과 다른 따뜻함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와 손녀가 나란히 앉은 모습은 그 자체로 그림책 표지 같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이번 정류장은...'
할머니는 팔꿈치로 아이를 툭툭 쳤다. 아이는 손을 뻗어 벨을 누르고는 나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배시시 웃었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좋아하던 아이 모습이 계속 맴돈다. 옆에서 흐뭇하게 잘했다고 해준 할머니도.
중고등학생 땐 버스에서 그러한 아이들을 보면 괜히 찬물을 끼얹고 싶은 못된 충동이 들었다. 아이가 벨을 누르려 손을 뻗으면 내가 먼저 잽싸게 눌러버렸다. 아이의 뒤통수가 울먹거렸고 아이 엄마는 뒤돌아 나를 째려봤다. 그때 난 아이에게 모든 사람들이 너의 순수함에 감동하고 배려해 주진 않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나 보다.
어른이 되어 갈수록 벨은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벨은 내려야 할 때만 떠올랐다. 벨 누르는 것보다 버스 기사님이 내게 건네주시는 인사가 훨씬 유의미하다는 걸 알았다. 그때 주고받은 인사는 특별할 것도 없는 날도 특별하게 만든다.
버스를 타면 비어 있는 창가 자리부터 찾는다. 창밖에 빠르게 지나가는 글자들 중 유독 한 글자를 꽂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한다. 머릿속으로 여행하는 기분이다. 모든 생각은 언제나 걱정으로 향하여 걱정을 걱정하면서 끝이 난다. 할 게 너무나도 많다. 벨을 누르고 싶어 하는 것도 마음에 넓직한 공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난 끊임없는 기억을 타고 이리저리 뒤틀리는 무의식 속에서 나를 깨워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이제는 나 대신 누가 벨 좀 눌러줬으면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