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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남우 Feb 20. 2022

카렐 차페크, <평범한 인생>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수록 나 자신의 삶은 완성되리라


<평범한 인생>은 한 철도 공무원의 이야기이다. 심장병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그는 자서전을 쓰기로 결심한다.


   시인을 꿈꿨으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그가 결국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철도 공무원을 선택했을 때, 그리고 일과 가정 사이에서 출세를 꿈꾸며 점점 가정에 소홀해지기 시작했을 때, 처음엔 그러한 인생을 스스로 '평범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합리화라고 생각했으나 곧 모든 이들이 그처럼 무언가를 위해 다른 한쪽을 포기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유년 시절, 청소년, 성인의 삶을 지나 어느덧 자서전을 쓰고 있는 현재 시점에 이르면서 회고록은 점점 일기의 형태를 띠었다.

   처음엔 기록을 목적으로 시작했던 쓰기였으나 과거를 추적하던 과정에서 철도 공무원은 내면의 억척스러운 인간, 우울한 인간, 낭만주의자 같은 여러 개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항상 내면에 존재하며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다. 디즈니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 기쁨이 같은 감정들이 자신의 차례라고 생각되었을 때 버튼을 누르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철도 공무원의 정체성 중에는 시인도 있었다. 그가 시인이기를 포기하고 시간이 꽤 흘렀을 때 한 젊은이가 그의 집에 찾아왔다. 과거 그가 쓴 시에 깊게 감명을 받은 젊은 이었다. 구절의 의미를 묻고 시에 대해 심층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젊은이 앞에서 그는 별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의 감성을 잊은 지 오래라 자신이 왜 그러한 시를 썼는지 그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다. 동시에 철도 공무원은 자신은 완전히 잊어버린 옛 흔적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배움이 되는 것을 목격함으로써 '삶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대체 얼마나 많은 경우의 인생이 있었던 건가. 넷, 다섯, 여섯, 여덟? 나의 인생을 구성하는 여덟 개의 삶이 있었다. 내게 시간이 조금 더 남아 있고, 조금 더 맑은 정신이 든다면 일련의 또 다른 삶들을 발견하게 되겠지. (중략) 다른 상황이 주어졌더라면 내게서는 전혀 다른 인물들이 등장해서 나와는 다른 삶을 영위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각자는 세대에서 세대를 통해 불어나는 사람들의  총합인지 모른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심장병, 낭만적 기질 같은 유전적 요인과 더불어 어릴 적 성당 문가에 서있는 한 거지를 봤을 때 느낀 '가난한 혼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그의 인생 전체에 걸쳐 불쑥 튀어나오는 것처럼, 자기 내면 모든 정체성은 다 어떤 순간을 계기로 어떤 사람의 영향으로 생겨난 경우들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어떤 이를 만났기에 지금 이렇게 책을 읽게 되었고,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게 되었고, 경주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때 그 사람과 그 공간이 아니었다면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우연성'만큼 신비로운 게 없는 듯하다.

간혹 무심결에 지나쳤던 것들이 어느 순간 내면 깊숙이 들어와 있는 걸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우리 모두 잔상의 노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초반에 느꼈던 '평범함'이라는 말의 의미가 한순간 지대한 힘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수록 나 자신의 삶은 완성되리라.'


   '내면의 모든 존재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은  타인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이 카렐 차페크가 <평범한 인생>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강조하는 휴머니즘이라고 한다. 하나의 자아에 아래 공간 그리고 만나는 사람에 따라   순간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는가. 타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결코 단면만 보고  사람을 규정할  없음을 느낀다. 동시에 어떤 사람을 '안다'라고 말하는  얼마나  착각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라고 생각하니 이 많은 사람들이 더욱 하나로 연결돼있는 듯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떤 걸 봤을 때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심리테스트 결과에서 '당신은 당신의 영역을 중요시합니다.'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누군가 내 사생활을 침범해서 기분이 나빴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수록 자신의 삶이 완성된다는 구절이 어떤 의미인지 와닿는다.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내면의 관찰과 분석은 다시 타인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순환은 작품 후반부를 읽던 중 머릿속에 떠올랐던 장면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한 열차가 있다. 철도 공무원의 삶을 빗댄 열차이다. 각 칸에는 자서전에 등장한 사람들이 승객으로 앉아있다. 역에 정차했을 때 열리는 문으로 내리는 사람은 없다. 새로 탑승하는 승객만 있을 뿐이다. 열차는 허공을 향해 원을 그리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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