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습자지를 대놓은 것처럼 뿌연 날이다.
세상에 습자지를 대놓은 것처럼 뿌연 날이다. 햇발에 봄이 느껴지기 무섭게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 내가 사는 도시의 학생들은 분주히 책가방을 메고 학원으로 향한다. 엄마의 빠른 발걸음을 좇아 부지런히 발을 놀리는 작은 발들도 있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은 대형 학원과 같은 건물에 있다. 엘리베이터 세 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늘 만원이다. 마치 급식실에서 밥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학생들처럼 사람들은 한 호기당 두 줄로 나란히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어떤 사람들은 공연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어떤 아이들은 학원 강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헬스를 하며 나에게 늘어난 기술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 생각 안 하고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지만 마치 없는 사람처럼 내 정신은 아늑한 공간에 숨어있다. 마치 유체를 이탈한 듯 나를 멀리서 조망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들리는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거친 호흡 소리에서 벗어나 어떤 소리도 빗겨 난 곳에 멀거니 서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미리 탑승 금지'라는 글자가 빨간색으로 근엄하게 적혀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한 번에 다 타기가 어렵다 보니 미리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사람들이 꽤 있나 보다. 저 빨간 글자의 효력인지 내가 서 있는 동안은 그런 사람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간절함 조차 짓누르는 저 얇은 종이 한 장의 유력이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를 구령하는 그림자 같아 소름이 돋기도 한다.
운동을 하며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을 연습 중이다. 오늘의 컨디션은 어떠한지, 운동을 하기에 몸이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전 날 어떠한 운동으로 어디 부위의 근육을 단련시켰는지 유의하며 오늘의 운동을 결정한다. 하체와 상체를 나누고, 다시 상체를 가슴과 등 부위로 나누어 전완근과 이두, 광배와 삼각근 등의 근육에 힘을 가한다.
근육을 단련시킨다는 것은 해당 부위에 미세한 생채기를 내고 균열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이 균열이 회복기를 거치며 단단해진다. 헬스에서는 '고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특정 근육을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자극을 극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립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관절만 움직이며 목표 근육을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레그 컬'이라는 하체 머신에서는 햄스트링을 사용하지만 '레그 익스텐션'에서는 똑같은 하체 운동이어도 대퇴사두근에 집중 자극을 준다. 트레이너는 머신 앞에 멀뚱히 앉아 어색하게 다리를 올렸다 내리는 나를 보며 종종 묻는다.
"자극이 제대로 느껴지시나요? 어느 부위에 자극이 오시나요?"
배와 가슴이 붙어 있지만 따로 힘을 줄 수 있고, 가슴에 대흉근, 소흉근이라는 두 부위가 있으며 등에도 광배근, 승모근, 능형근, 척추기립근 등의 다양한 이름이 붙어 있단 사실조차 이제야 인지하기 시작한 초보 헬서에게는 미지수가 포함된 방정식만큼이나 난해한 질문이다.
트레이너들은 근무 시간이 얼마나 긴 건지 하루 열두 시간은 거뜬히 넘는 시간 동안 헬스장에 상주해 있는 듯하다. 한 시간 단위로 나눠 50분 동안 일대일 수업을 하고 10분을 휴식한다. 하지만 50분을 딱 지켜 수업을 하면 회원들이 섭섭해할 수 있기에 조금씩 더 진행하기도 하고, 간혹 지각하는 회원들에게는 자신의 쉬는 시간을 할애해 운동을 가르친다. '가르친다'라고 하기엔 옆에서 보기에 그들의 태도는 조금 다른 지점에 있는 것 같다. 회원을 통해 월급을 받다 보니 헬스장 관장보다 더 높은 사장님으로 '모신다'.
PT란 것을 생전 처음 받아보는 나로서는 트레이너들의 태도가 당황스러웠다. 사람들이 흔히 '영업'으로 치부하는 그들의 태도가 이중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관계의 진정성을 중요시하는 나로서는 수업 때는 높은 톤의 목소리로 친절하게 운동을 알려주다가도, 수업 외의 시간에는 표정이란 것이 사라지고 최대한 그 큰 근육질의 몸을 구석에 숨기고 싶어 하는 마른오징어와 같은 습성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트레이너들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자, 제법 PT에 익숙한 친구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나는 너무 잘 이해돼. 그게 그 사람들 직업인데 당연히 숨고 싶지. 돈보다도 꾸역꾸역 시간을 버티는 거지. 수업 때는 자기 성격과 무관하게 최대한 연기하며 회원들 모시면서 수업하고, 수업 외에는 뻗어버리는 거야. 트레이너한테 회원들은 단순한 서류 한 장인 거야. 너도 그냥 서류 한 장일 뿐인 거고."
헬스장에 다니는 서류 더미의 사람들. PT 외의 시간에도 개인 운동이나 식단 등의 조언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내게, 친구는 그런 건 연예인들이 받는 완전 프리미엄급의 PT라고 조언해 주었다. 누군가의 직장에 서류 한 장으로 기입되는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고 나니 오히려 헬스장에 대한 낯섦이나 두려움이 사라졌다. 살아있지 않은 것에는 감정도 없을 테니까. 아무도 내 자세가 어색하다거나 낮은 중량의 덤벨에도 이두를 덜덜 떨며 들어 올리고 있다는 걸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진정성이 사라지면 무엇이 남을까? 회원권 혹은 수업 일수 정도가 남는 걸까? 그러고 보니 헬스장이 아니더라도 진정성이 결여된 인간관계가 더 흔한 세상이란 생각이 든다. 카페에 가도, 식당에 가도, 도서관이나 예식장에도 가도 우리는 어떠한 역할을 '연기'한다. '솔'자리의 계이름으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점원이 되기도 하고 "이 책의 청구기호대로 찾아보았는데 책이 없네요"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도서관 회원이 되기도 한다. 그 누구도 "밥은 먹었니?", "기분은 어떠니?", "어디 아픈 덴 없니?"하고 눈을 마주치며 안부를 묻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오래도록 바뀌지 않는 층수 표시판을 멍하니 바라보다 다급하게 구르는 바퀴 소리를 듣는다. 아, 이 건물에는 재활치료로 유명한 대형 병원이 함께 있다. 퇴근길에 횡단보도의 신호를 무시하고 우회전하던 차량에 치여 반인불수가 됐다는 50대의 어느 가장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할 때는 걸어서 나갔다는 유명한 설화가 있는 병원이다. 실제로 이 건물 앞에는 구급차가 쉬지 않고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온다.
바퀴 소리를 울리며 등장한 구급대원은 얼굴 절반을 붕대로 감은 사람을 휠 스트레처에 태워오고 있었다. 지름이 10cm 정도 되어 보이는 하얀 압박 붕대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하기 힘든 어떤 사람의 얼굴을 가로지르거나 엑스 자로 가둔 채 일부는 빨간 핏물이 약간 배어 있었다.
"이 건물이니까 이제 다 왔어요."
능숙하게 환자를 안내하고 안심시키는 구급대원의 언어는 어디선가 숱하게 들어 본 것처럼 낯익으면서도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한 편으로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누군가 새치기를 할까 바싹 붙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고, 맨 앞줄의 사람들은 두어 걸음씩 뒤로 물러서 휠 스트레처가 먼저 탈 수 있도록 양보했다.
구급대원은 자신의 역할을 한다. 서로를 모르는 엘리베이터 앞 사람들은 각자의 소신을 따른다. 사람사이의 관계가 투명하게 가깝지 않더라도, 습자지 한 장 댄 것처럼 어딘가 아련하고 서로가 빗긴 자리에 멀찍이 서 있더라도 그건 그대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