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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Nov 11. 2021

산이 열어주는 가을축제

청명산을 오른다. 땅을 보며 계절을 느낀다.

21.9.13월


    해발 200미터 남짓의 청명산은 낮지만 매우 가파르고 수원시와 용인시를 가로지르는 매우 넓은 산이다. 집에서 가깝지만 이틀에 한 번 오르는 것도 참 힘들다. 특히 체감상 1000개는 됨직한 계단과 80도 정도 되는 산의 기울기보다 가장 넘기 어려운 산은 문지방이라는 산이다. 그 산을 넘어 청명산 앞에 다다르기가 가장 멀고 가장 많은 좌절을 준다.




    산을 오를  바로    땅을 보고 걷는다. 어디쯤 확인하려 고개를  번씩 들긴 하지만 계속 멀리 내다보고 걷다간 넘어지기 십상이다. 나무뿌리와 돌팍을 피해 발걸음을 요리조리 옮긴다. 많은 발길이 닿았지만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산은 보폭을 좁게 한다. 본래의 걸음을 잊고 한번 힘껏 내딛다가는  걸음 안가 지쳐서 오히려 절룩 걸음이 된다.




    땅만 보고 걸어도 많은 것들이 변한다. 상수리나무에서 도토리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밤 쭉정이도 굴러다니기 시작한다. 다람쥐야, 부디 사람에게 뺏기지 말고 잘 챙겨서 겨울을 나렴, 도토리를 피해 걷는다. 매미 소리는 어쩐지 힘이 빠져 보이고, 귀뚜라미가 제 세상인양 우렁차게 아침부터 울어댄다. 딱따구리는 나무에 대고 부리를 쪼아대고, 직박구리는 푸드덕 날아다닌다. 거의 만나던 지점에서 만나는 사람들, 잠깐 앉아 쉴 때면 살을 스치고 지나가는 산들바람, 부지런히 기어가는 애벌레,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회색 나비가 잘 왔다고 반겨준다. 통통했던 애벌레의 시절을 거쳐 꼼짝 못 한 채 견뎌내야 하는 번데기가 되었다가 진정한 자유를 찾은 배추흰나비가 경외스럽다.



    지나간 장마에 수 만 가지 버섯들은 돋아났고, 살아남아 버티던 길쭉한 상수리나무는 쓰러졌다. 발 끝에서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 거미줄에 걸려 대롱대롱 흔들리는 가랑잎.



    산에서 시계에서 볼 수 없는 시간을 느낀다.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소리들, 마음을 열면 내어주는 산의 숨결들. 산을 향한 첫 발걸음만 잘 떼어내면 산이 내어주는 축제에 참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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