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산을 오른다. 땅을 보며 계절을 느낀다.
21.9.13월
해발 200미터 남짓의 청명산은 낮지만 매우 가파르고 수원시와 용인시를 가로지르는 매우 넓은 산이다. 집에서 가깝지만 이틀에 한 번 오르는 것도 참 힘들다. 특히 체감상 1000개는 됨직한 계단과 80도 정도 되는 산의 기울기보다 가장 넘기 어려운 산은 문지방이라는 산이다. 그 산을 넘어 청명산 앞에 다다르기가 가장 멀고 가장 많은 좌절을 준다.
산을 오를 땐 바로 한 발 앞 땅을 보고 걷는다. 어디쯤 왔나 확인하려 고개를 한 번씩 들긴 하지만 계속 멀리 내다보고 걷다간 넘어지기 십상이다. 나무뿌리와 돌팍을 피해 발걸음을 요리조리 옮긴다. 많은 발길이 닿았지만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산은 보폭을 좁게 한다. 본래의 걸음을 잊고 한번 힘껏 내딛다가는 몇 걸음 안가 지쳐서 오히려 절룩 걸음이 된다.
땅만 보고 걸어도 많은 것들이 변한다. 상수리나무에서 도토리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밤 쭉정이도 굴러다니기 시작한다. 다람쥐야, 부디 사람에게 뺏기지 말고 잘 챙겨서 겨울을 나렴, 도토리를 피해 걷는다. 매미 소리는 어쩐지 힘이 빠져 보이고, 귀뚜라미가 제 세상인양 우렁차게 아침부터 울어댄다. 딱따구리는 나무에 대고 부리를 쪼아대고, 직박구리는 푸드덕 날아다닌다. 거의 만나던 지점에서 만나는 사람들, 잠깐 앉아 쉴 때면 살을 스치고 지나가는 산들바람, 부지런히 기어가는 애벌레,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회색 나비가 잘 왔다고 반겨준다. 통통했던 애벌레의 시절을 거쳐 꼼짝 못 한 채 견뎌내야 하는 번데기가 되었다가 진정한 자유를 찾은 배추흰나비가 경외스럽다.
지나간 장마에 수 만 가지 버섯들은 돋아났고, 살아남아 버티던 길쭉한 상수리나무는 쓰러졌다. 발 끝에서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 거미줄에 걸려 대롱대롱 흔들리는 가랑잎.
산에서 시계에서 볼 수 없는 시간을 느낀다.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소리들, 마음을 열면 내어주는 산의 숨결들. 산을 향한 첫 발걸음만 잘 떼어내면 산이 내어주는 축제에 참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