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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Jun 16. 2023

육아휴직 수기 공모전 대상 수상작

달리는 호랑이 위에서 뛰어내리기

<달리는 호랑이 위에서 뛰어내리기>

     

대살진 호랑이가 날카로운 발톱을 대지 위에 박아 넣으며 질주한다. 대찬 털이 근육을 따라 일렁인다. 어둠 속에 빛나는 산짐승의 눈은 뼛속까지 상대를 꿰뚫어 보는 듯하다. 그 위에 몸을 벌벌 떨며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 두 손에 호랑이의 털가죽을 움켜쥐고, 다리로 바짝 몸통을 죈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시야는 뿌옇다.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호랑이를 쥔 손을 놓을 수도 없다. 호랑이를 놓치는 순간 산짐승의 먹이가 되거나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이다. 이대로 끌려갈 수도, 뛰어내릴 수도 없는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상황. 살다 보면 우리는 때때로 이런 상황에 부닥친다. 달리는 호랑이 위에 올라탄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압바~ 압바,빠빠빠빠”하며 노래를 불렀다. 아빠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재빨리 기어가 다리를 붙들고 늘어졌다. 아빠가 샤워할 때면 화장실 문도 닫지 못하게 했다. 아빠의 사진을 보며 웃고, 아빠의 귀를 만지며 안기길 좋아했다. 그러나 아빠는 달이 떴을 때 출·퇴근을 했다. 주말에도, 휴일에도, 크리스마스와 명절 연휴에도 아이는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 아이가 제일 처음 내뱉은 문장도 아빠와 관련된 말이었다.

  “아빠는 회사 갔어.”     


  같이 살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 어느새 남편은 돈을 벌어 오는 역할 외에 다른 보람을 느끼기 힘들었다. 일을 그만두고 낯선 도시에서 출산과 육아라는 거대 산맥에 가로막힌 나 또한 늘 탈진상태였다. 아이는 귀엽지만, 나의 인간 기본 욕구를 파산시켰다. 제대로 먹거나 잠을 자거나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하루 중 유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어른은 택배 근로자뿐이었다. 기다리는 남편은 오지 않고, 우울증이 나를 덮쳤다. 어쩌다 남편이 집에 있는 날에도 둘 다 일상을 살아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자주 다투고 눈물이 났다. 이렇게 힘든 데 남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 걸까, 무조건 외동이라는 생각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에겐 변화가 필요했다. 아이의 예쁨을 충분히 누리고 가족으로서 갖는 안정감과 쉼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대출과 회사 눈치가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서 지금까지 육아 휴직에 성공한 사람은 고작 두 명뿐이었다. 그것도 본인이나 배우자가 매우 아파서 가능한 사례였다. 진짜 육아를 위해 육아 휴직을 할 수 있을까? 복직을 못 하거나 하더라도 차별받진 않을까? 수입 없이 우리가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많은 고민 끝에 우린 달리는 호랑이 위에서 뛰어내리기로 결심했다. 남편과 나를 살리고, 아이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향유하기 위해 어떤 위험도 함께 감수하기로 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장로인 요한 크리스토프 아널드는 그의 저서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에서 부모들에게 속도를 늦출 것을 제안한다. “눈 위에 누워서 팔다리를 위아래로 휘젓고, 웅덩이에서 물을 튀기고, 나무를 오르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경험할 기회를 모든 아이에게 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아이에게 ‘오늘’을 선물로 주었다. 비가 오는 여름날엔 래시가드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물을 튀기며 미끄럼틀을 타고 모래를 삽으로 푸고, 물길을 따라 달렸다. 처마 끝에서 낙하하는 물줄기 아래 손을 대며 강렬한 힘을 느끼고 바람에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한쪽으로 모아서 인디언 집을 만들었다. 해가 쨍한 날엔 산에서 비눗방울을 불며 숲 탐방을 했다. 아이는 스스로 무한동력 발전기를 돌리며 넘치는 체력을 발산했다. 남편과 나는 어려운 결정을 함께 내리며 서로 양보하고 포용하는 기쁨을 누렸다.     


  일 년의 육아 휴직이 어느덧 끝나가고 있었다. 다시 누리기 힘들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하다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백 이십 년 만의 한파로 꽁꽁 얼어버린 한반도를 떠나 지구 반대편으로 갔다. 호주에서 한 달 살기를 결정한 것이다. 정반대의 계절을 사는 호주에서 새해 첫 불꽃놀이를 보았다. 역사 깊은 멜버른 동물원에서 아이는 다양한 동물들에 매료되었고, 길이가 2미터가 넘는 뱀 인형을 여행 내내 두르고 다녔다. 아이는 아빠에게 수영을 배우고 원반던지기와 캐치볼 등을 하며 함박웃음을 피워 올렸다.


  육아 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며 우리는 전과 많이 달라졌다. 업무량이나 상황은 그대로였지만 마음의 근육이 많이 붙었다. 나의 힘듦보다 상대의 희생과 고통을 헤아리며 힘이 되어주고자 노력한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는 부부의 화합이 중요하단 걸 깨달았다. 부모가 바로 서야 아이가 평안하다. 그리고 육아가 힘들어 무조건 외동을 외쳤던 우린 특별한 선물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다음 해, 아이에겐 동생이 생겼다.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추억, 특히 부모님과 함께한 추억들은 미래에 숭고하고도 강렬한, 유익하고도 아주 건전한 기억이 될 겁니다. (…) 유년 시절에 간직했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가장 훌륭한 교육이 될 겁니다.” 육아 휴직 동안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도 성큼 성장했다. 아이의 기질과 성향을 더 잘 알게 되고, 마찰이 생길 때 여러 방법으로 해소해 나가며 우리의 지도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



**얼마전 참여했던 육아휴직 수기 공모전에서 감사하게도 대상을 받았습니다.

첫째 아이가 3-4살 때,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 아닙니다. 육아휴직을 사용했거나, 사용 중인 사람이 공모 대상이라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한 소식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육아로 분투 중인 분들과 오늘 하루도 애면글면 살아내고 계신 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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