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방학에 꿀동이의 주 계획은 시골에 가기와 눈썰매 타기이다.
초등학교의 방학은 길다. 여름은 한 달, 겨울은 두 달이다. 방학이면 몇 안 되는, 다니던 학원마저 그만두고 오롯이 방학을 즐긴다. 꿀동이의, 꿀동이에 의한, 꿀동이를 위한 시간이다. 방학이 다가오면 꿀동이는 스스로 방학 계획을 세우고 부모님과 이야기한다. 어떤 방학을 보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토의한다. 물론 아이 주도의 방학 계획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매번 꿀동이와 상의하는 건 꿀동이의 인생이 나의 소유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꿀동이보다 나은 사람이 아니고 나의 결정이 더 유익하리란 보장도 없기에 꿀동이의 의견을 경청하고 돕고 응원한다. 꿀동이는 신나서 하고 싶은 일을 만 개도 더 넘게 작성하고 각종 이야깃거리들을 끌어와 조잘댄다.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이렇게 보내도 되는가, 조금 더 그럴듯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망설인다. 노란 버스에 휘날리는 방학특강 현수막과 얼마의 돈으로 환산되는 교육비 지출 경쟁이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몇 학년 때는 어느 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몇 살이 되기 전에는 무엇인가를 마쳐야 한다는 주위의 말들이 심장을 쪼그라들게 한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만 좇아 살아도 되는 것인가, 이게 정말 꿀동이에게 이로운 일인가, 부모로서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가 되돌아본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건 다른 아이들과 비교만 하지 않는다면 꿀동이는 자신의 속도대로 끊임없이 성장하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방학에 꿀동이의 주 계획은 시골에 가기와 눈썰매 타기이다. 조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에 가면 꿀동이는 완벽한 시골아이가 된다. 두툼한 털바지에 보드라운 패딩을 껴입고 시골 마을을 누빈다. 아이가 귀한 농촌에서 씩씩하게 뛰어다니는 꿀동이는 동네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인사 한 번에 초코파이 한 박스가 돌아오고, 눈사람 하나에 귤과 용돈이 쥐어진다. 꿀동이는 조부모님 댁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농장에 가는 걸 좋아한다. 산에 있는 농장에 가면 온통 꿀동이 세상이 펼쳐진다. 염소 가족에게 풀을 뜯어 주고, 닭 무리를 헤집고 들어가 달걀을 꺼낸다. 할아버지를 따라 소에게 여물을 주고, 분홍색 목줄을 찬 강아지와 달리기 시합을 한다. 할아버지의 연장 창고에서 각종 장비들을 꺼내 자신만의 아지트를 건설하고, 높이 쌓아놓은 흙더미 위에 낑낑대고 올라가 옷이 더러워지든 말든 미끄럼을 타고 내려온다. 꿀동이를 보는 할아버지의 눈은 초승달처럼 주름이 번지고 "좋아하는 거 하게 놔둬. 애들은 자기 하고 싶은 거 해야 해"하며 꿀동이를 응원하신다.
꿀동이는 할아버지 트럭에 타는 걸 좋아한다. 우리 승용차와 할아버지 트럭 중에 늘 할아버지 차에 올라탄다. 길을 걸을 땐 "할아버지 손 잡고 가요"하며 손을 잡아끌고, "엄마는 좋겠다. 어릴 때 이렇게 좋은 곳에서 자라서." 하며 속마음을 드러낸다. 꿀동이는 동생 꽃동이의 손을 붙잡고, 조부모님 집 바로 옆에 사시는 증조할머니 댁에 참새 방앗간 드나들듯 찾아간다. 증조할머니 집을 누비며 태권도 공연을 펼치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다. 찾아오는 이가 드문 증조할머니 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따뜻해지고, 증조할머니가 말려둔 곶감 보따리가 아이들 앞에 펼쳐진다.
시골에 가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은 마냥 신나지만 돌봐야 하는 나는 일거리가 배로 늘어난다. 갖은 먼지와 흙이 묻은 옷을 세탁기에 넣기 전에 손으로 애벌빨래를 해야 하고, 외풍이 드는 단독 주택이라 옷을 두둑이 껴입혀야 한다. 남편은 회사에 가야 하므로 혼자 아이 둘을 챙기며 먼 길을 운전하고, 씻기고 먹이며 돌봐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밥을 사 먹을 수 없으므로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로 하루 세끼 밥을 하고 간식을 챙겨야 한다. 말 그대로 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밥 하는 '돌밥' 인생이 찾아온다. 때로 향긋한 커피가 생각날 때도 마실 수가 없다. 전파가 잘 안 터져서 전화가 잘 안 되고 인터넷도 느리다. 엄마로서의 삶에 충실하다 보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시간은커녕 나를 위해 그 무엇을 위한 시간을 내기도 힘들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싶어도 도통 짬이 나질 않는다. 무엇보다 아이들 짐을 한가득 싸고 푸는 것이 큰 일이다. 갑자기 아프면 멀리 있는 병원까지 찾아가야 하고, 평소와 다른 일상의 패턴을 잡기 위해 한 동안 고생해야 한다. 그럼에도 방학마다 시골에 가는 건 아이들 얼굴에 차오르는 생기와 부모님의 살가운 표정이 나에게도 새로운 힘을 주기 때문이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학습에서 손을 떼는 건 아니다. 평소에도 나와 홈스터디를 해왔기에 방학엔 좀 더 확장된 자가 학습을 한다. 교과 수학, 사고력 수학, 연산, 한자, 독해와 어휘, 영어 등 아이와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과목을 정하고 수준에 맞는 문제집을 선택한다. 일주일에 무슨 과목을 얼마나 할지, 어느 시간에 얼마 큼의 분량을 할지 때에 맞게 수정해 가며 공부한다. 무엇보다 공부를 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자주 상의하고 이 모든 것이 아이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이야기한다. 아이의 결정이 무엇이든 엄마는 너를 도울 것이며 그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지만, 그 순간조차 엄마 아빠가 함께임을 확인해 준다. 학원과 홈 스터디, 공부와 또 다른 분야 그 모든 것이 아이에게 달린, 꿀동이의 인생이다.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아이의 선택이며 우리의 지지이다.
꿀동이는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루 종일 하고, 자유롭게 놀기 위해 아침 여섯 시 반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자리에 든다. 공부할 때는 혼자 집중해서 하는 걸 선호해서 방문을 닫고 들어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 뒤 가끔 5분씩 쉴 때만 얼굴을 내비친다. 하루에 다섯 과목 정도의 공부를 마치면 좋아하는 책 읽기와 컴퓨터 코딩, 놀이터에서 땅파기, 혼자 편의점 가서 젤리 사기, 엄마와 보드게임, 윷놀이, 동생과 숨바꼭질 등 좋아하는 일을 하며 땀을 흘린다. 시골에 갔을 땐 아침 공부 후에 하루종일 산에 있는 목장에 가서 지내기 일쑤다.
꿀동이를 통해 나는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한다. 해도 해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던 성적 제일주의와 좋은 대학에 가서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것이 전부라고 여겼던 내 작은 세상을 깨고, 그 끝을 알 수 없지만 매일이 옹골차고 아람진 아이의 꽃밭을 맞아들인다. 뒤도 안 돌아보고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세상에서 꿀동이만 너무 뒤처지는 건 아닐까, 세상 물정 모르고 따뜻한 가족의 울타리 안에만 갇혀 있는 건 아닐까? 때때로 두려움이 엄습하지만 우린 이 행복을 포기할 수가 없다. 인문학자로서 예일 대학의 인문학 교수이자 문학 비평가인 해럴드 블룸은 <세계문학의 천재들>에서 이렇게 성토한다. "세상에는 어떤 사건도 순수하고 단순하지 않다. 내 것, 또는 당신의 것이나 그의 것, 그녀의 것으로만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이 되고 내가 되며 때로 그나 그녀가 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가장 커다란 모험이다." 어쩌면 나와 꿀동이는 내가 되고, 그가 되기 위해 가장 커다란 모험을 하는 중일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