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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Nov 23. 2023

색을 만나다

이전에 나는 대부분 단색, 주로 연필을 재료로 하는 그림을 그렸다.  처음 연필초상화를 그릴 때에는 흑백에 적응되어 있었다. 그래서 칼라사진의 경우는 어떻게 흑백을 표현해야 할지 몰라 처음엔 컴퓨터에서 흑백 출력해서 자료로 보곤 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되어서야 칼라 사진을 보고 흑백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항상 색에 자신이 없었다. 그린 그림 중에는 수채화 그림도 있었지만 참 조심스러웠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수채화물감을 사용할 때면 서투른 내 솜씨가 가감 없이 드러났고 물감의 번짐에는 망설임이 들어앉아 있었다. 색은 항상 어렵기만 했다. 유명하다는 72색 유성색연필을 욕심껏 사놓고도 제대로 된 그림 하나도 못 그렸다. 나는 색이 겁났다.


그러다 오일파스텔을 만났다. 시작은 우연히 본 중고 물품 거래 애플리케이션인 ’당근‘때문이었다.


2020년 11월. 한참 코로나19로 밖으로 향하는 일상이 멈춰 있었을 때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한동안 바느질을 하다가 한동안 그림을 그렸다. 새로운 재료를 찾아보던 중 오일파스텔을 알게 되었다.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 우연히 들어간 중고물품 거래 앱에서 오일파스텔을 판매한다는 글을 본 것이다. 보자마자 거래를 요청했고 그렇게 나의 첫 오일파스텔 ’까렌다쉬‘를 만났다.


처음 종이에 오일파스텔을 칠했을 때의 느낌은 꾸덕하다였다. 마치 요즘 우리 딸이 흠뻑 빠져있는 그릭요거트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탁에 굴러다니는 귤을 보고 얼른 그려보았다. 단순한 원형의 귤에 보이는 그림자와 표면의 색변화를 오일파스텔은 그대로 표현해 주었다. 꾸덕꾸덕 꾸덕꾸덕. 연필과 다른 이 오묘한 매력에 흠뻑 빠졌다.



오일파스텔의 두 번째 인상은 강렬함이었다. 그 색의 강렬함과 재료가 종이에 얹어지면서 느껴지는 질감이 연필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과감한 용기를 주었다. 승무를 추는 장면을 그리기 위해 스케치 없이 검은 종이에 흰 오일파스텔을 얹는 순간 나는 과감해진다. 칠하고 문지르고 얹으면서 자유를 느낀다. 세밀함이 덜 표현이 되어도 되고 덩어리로도 대상이 표현되는 이 재료가 좋았다.



그렇게 검은 종이에 ‘한국의 춤’ 시리즈를 그렸다. 펄럭이는 하얀 한삼과 원색의 한복은 검은 종이 위의 오일파스텔 표현에 찰떡이었다.



그림의 재료들은 각각의 매력이 있다. 내가 연필을 통해 형태의 매력을 알았고 수채화를 통해 우연의 매력을 알았다면 오일파스텔은 강렬한 색의 매력을 알려주었다.


지금도 그저 색이 그리고 싶을 때는 오일파스텔을 찾는다. 강렬함으로 솜씨의 부족함을 조금 덮어주는 그 아량도 더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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