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하러 시댁에 다녀왔다. 오면서 가져온 먹거리들이 한가득이다. 알배기 배추, 달달한 가을무, 호박, 약 한번 안 치신 대파, 쪽파 한가득, 어제 도정한 쌀까지.
앉아서 오랜 시간 김장 속을 버무리느라 오늘 아침 일어나니 허벅지 안쪽과 엉덩이, 등까지 모든 근육이 뻐근하다. 제대로 걷지 못해 어그적거린다. 그래도 아직 가족들이 일어나지 않은 이 시간이 뭐든 집중해서 하기 좋다.
이상하게 시골에서 싱싱했던 마늘이나 무들은 아파트인 우리 집으로 가져오기만 하면 마르고 바람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가져온 파와 무들을 오래 먹을 수 있도록 얼른 처리해야 했다. 쪽파는 우리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쪽파김치로, 무는 아삭아삭 시원한 생채로. 아, 맞다! 어제 잠깐 들렀던 친정에서 주신 통삼겹살은 오랜만에 저수분수육으로 해서 먹을까?
작업을 시작한다. 기다란 파는 두 동강내어 깨끗이 씻어놓고 물기가 마르길 기다린다. 그 사이 쪽파도 깨끗하게 한 자리 차지한다. 김치 양념을 준비하고 나름 우리 집에서 제일 큰 스텐 양푼을 꺼냈다. 제일 크다고 하지만 큰 사골냄비정도밖에 안 된다. 김치 양이 많으면 여러 번 해야 할 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양푼 밖으로 넘치지 않게 쪽파를 양념에 조심조심 버무린다. 작은 김치통 하나 완성. 고기 구워 먹을 때 곁들이면 좋을 대파김치도 한 통.
아직 가족들이 기척이 없다. 얼른 무도 썰어서 굵직한 생채 반찬을 만들었다. 유명하신 어남선생의 레시피를 따라서 커다란 반찬통을 채운다. 그러고도 무가 남았네. 그렇다면 이번엔 비벼먹기 좋은 가는 무생채도 한 통 만들자. 아, 통삼겹살 수육! 며칠 전부터 굴러다니던 사과 하나와 양파를 굵게 썰어 냄비 바닥에 깔고 된장과 간 마늘로 목욕을 한 통삼겹살을 올린다. 그대로 물 없이 작은 불로 서서히 익힌다. 어느새 구수한 된장냄새와 함께 수육은 익어간다.
식구들이 하나 둘 냄새를 맡고 나온다. 방금 했지만 무생채는 양념맛이 어느새 배어 무의 알싸한 매운맛이 덮였다. 물론 맛있는 가을 무니까. 마지막 비빔용 무생채를 완성한다. 그리고 맛있게 먹는 가족들 모습에 무생채를 리필한다.
그리고 나니 어느새 오후 4시가 넘었다. 아침 10시부터 부산하게 움직여 알뜰하게 먹거리들을 만들었다. 물론 사이사이 막내의 방 커다란 유리창 청소를 하고 난방용 에어캡을 붙이고 쓰레기 정리하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처리한 것은 덤.
“휴!”
크게 숨을 내쉬며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나, 나갔다 온다!”
그리고는 책과 아이패드, 필기도구를 들고 집 근처 까페로 왔다. 평소엔 늘 아메리카노를 마셨지만 오늘은 헤즐럿까페라떼를 시킨다. 살짝 달달한 맛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얀 종이컵에 나를 위로하는 문구를 쓴다.
‘너 진짜 오늘 수고했다! “
나는 오늘 여기서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수고한 나를 위로하고 집에 들어갈 것이다.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