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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Nov 29. 2023

배경

주말 아침.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이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다. 산책도 하고 커피도 내려 마시고 이렇게 그림도 그린다.


오늘은 드로잉을 한다. 무엇을 그릴까 하며 핀터레스트의 참고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본다. 그래, 오늘은 너다. 창백할 정도로 피부가 하얀 모델이 꽃장식을 머리 위에 쓰고 있다. 단순한 얼굴에 비해 머리장식의 색이 도드라져 보였다.


자주 사용하는 오일콘테로 인물을 그린다. 그리고 꽃장식의 쨍한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오일파스텔을 들었다. 원색에 가까운 꽃장식이 화사해 보였다.


얼굴과 머리의 꽃장식, 그게 다였다. 그런데 아마추어인 내 눈에도 뭔가 느낌이 약하다.

“뭐 때문이지? 좀 아쉬운데?”

자세히 보니 창백하다시피 한 인물의 느낌이 제대로 살지 않는다. 얼굴은 거의 연필색을 올리지 않은 상태다.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종이색 이상으로 흰 색을 표현할 수 없다. 이게 최선이다.


문득 예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림의 명도를 조절하는 방법에는  그리는 대상 자체에 차이를 두게 할 수 있지만 그 배경을 이용할 수도 있어요."

그래, 대상을 더 이상 밝게 할 수 없다면 배경을 이용하자.


얼굴을 둘러싼 배경을 검게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밋밋했던 얼굴색이 더 환하게 보인다. 처음 화려한 꽃이 보였던 시선이 의외로 검은 배경과 얼굴 쪽으로 돌려진다. 배경을 어둡게 하면서 얼굴의 환한 부분이 강조되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검은 배경은 환한 얼굴을 강렬하게 돋보이도록 한다. 깊이가 생겼다.



미술시간에 아이들이 단골로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배경 꼭 해야 해요?”

“안 하면 안 돼요?”


물론 배경을 그리지 않는다고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배경으로 인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돋보이게 된다. 배경은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생각과 만나는 지점이 있다. 오늘도 그랬다. 그림이 배경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사람도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 내 주변이 나를 표현하기도 한다. 나를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을 정돈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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