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도 후에도 친정엄마와 여행을 간 적이 별로 없었다. 나 사느라 바빠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제대로 어딜 가질 못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 중의 하나였다. 혼자 남으신 엄마를 뵐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칠순이 다 되어 가셔도 어딜 맘대로 다니시지 못하는 모습이 더욱 안타까웠다.
큰 추위가 간신히 사라진 어느 2월, 큰맘 먹고 혼자 친정에 갔다. 연락도 없이 온 나를 보고 엄마는 웬일이냐 하시면서도 반가워하셨다. 집에만 계셔 답답하셨는지 엄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별로 살가운 딸이 아니었던 나도 어느새 엄마와 수다를 떨고 엄마의 푸념을 함께 들어줄 나이가 되었다.
“엄마, 우리 강원도라도 가서 바닷바람 쐬고 올까?"
엄마와 이런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갑자기 시간이 아까웠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엄마는 어리둥절해하셨다.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하셨다.
망설이시는 엄마를 설득해 강원도로 가기로 했다. 간만의 외출이어서인지 엄마는 외투를 입고 화려한 스카프도 두르셨다. 겨울이라 볼 거 없는 고속도로 옆의 산들을 보며 연신 이야기를 하셨다. 얼마 전 내렸던 눈은 거의 녹아 사라졌고 잿빛의 풍경과 헐벗은 나무들로 펼쳐져 있었다.
강릉 오죽헌에 도착했다. 햇살은 제법 따뜻했고 오죽헌엔 매화가 한창이었다. 엄마는 예쁘다며 휴대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으셨다.
“예전에 아빠와 왔을 때랑 많이 달라졌네.”
엄마는 예전과 많이 달라진 건물들을 보며 저건 없었는데 생겼네, 그때는 바닥이 흙이었는데 잘 꾸며 놓았네 하시면서 찬찬히 둘러보셨다.
사진을 찍어드리려고 하니 엄마는 등을 돌리셨다.
“싫다, 얘. 주름이 자글거리는데 무슨 사진은.”
결국 엄마가 오죽헌 건물에 한참 빠져 계실 때 몰래 찍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쐬고 싶다고 하셔서 경포해변으로 향했다. 바닷가라 그런지 제법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바닷가를 천천히 거닐던 엄마는 먼바다를 바라보다가 모래사장에서 조개껍질을 줍기도 하셨다. 그 모습을 또 몰래 찍었다.
몸이 차가워진 우리는 근처 3층에 있는 카페에 갔다. 생각해 보니 엄마와 처음 간 카페였다. 엄마는 무슨 커피냐 하시면서도 풍경 좋은 창가에 자리를 잡으셨다. 엄마는 창밖의 수평선을 한참 바라보셨다. 파도는 연신 하얀 거품을 만들어 백사장으로 밀어냈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서쪽 하늘을 보고서야 다시 친정집으로 출발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엄마와 둘만의 따뜻한 시간이었다.
엄마는 바로 집으로 가기 위해 밤에 운전해야 하는 나를 보고 걱정하셨다. 괜찮다고 천천히 가겠다는 다짐을 듣고서야 조심히 잘 가라고 인사를 하셨다.
“오늘 잘 구경하고 왔다. 고맙다.”
가슴 한쪽이 서서히 따뜻해져 왔다. 목에서 무언가 탁 메어왔다.
“뭘…. 오래 있지도 못했는데. 다음에 또 가자.”
집으로 가는 길에 왜 그리 마음이 아프던지. 남들이 다 가는 가까운 곳도 제대로 못 다니시는 엄마가 한없이 안쓰러웠다. 엄마의 삶이 통째로 떠올라 눈앞이 흐려졌다. 알면서도 잘 대해드리지 못하는 내가 참 무심했다.
다음 날 엄마와의 짧은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찍히기 싫어하시던 엄마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름이 될 선을 하나하나 그리면서 엄마의 얼굴을 더 선명하게 보았다. 구부정한 옷태를 그리면서 버거웠던 엄마의 삶이 보였다. 그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느라 온 힘을 쏟았을 엄마가 느껴졌다. 이제야 그걸 느끼는 못난 딸의 모습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