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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Dec 04. 2023

유디트

많은 화가들이 사랑한 그림의 소재로 유디트를 빼놓을 수 없다.


유디트는 성서에 나오는 인물이다. 자신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적장의 목을 잘라 돌아온다. 흔치 않은 색깔의 여성으로 많은 화가들의 뮤즈가 되어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적장의 목을 베는 순간에도 성녀처럼 보일 정도로 차분하게 그린 리치아노, 어린 소녀로 표현하여 두려워하는 감정을 표정으로 그린 카바라조, 독립투사의 모습이 많이 보이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가 있다.


유디트라는 인물을, 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에서 처음 알았다. 클림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화가이다. 그의 작품 ‘유디트’에서 처음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턱을 들고 반쯤 감긴 눈으로 내려 보는 듯한 여인의 얼굴이었다. 나른하고 뇌쇄적인 눈빛으로 너무나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금빛 가득한 장식도 얼굴 쪽에 화려하게 배치되어 있어 몽환적인 눈빛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도도한 듯 얼굴을 들고 한쪽 가슴은 드러내고 다른 한쪽 가슴이 훤히 드러날 얇은 숄을 걸치고 있다. 게다가 입도 살짝 벌리고 있어 더욱 관능적으로 보였다.


그중 유독 클림트의 ‘유디트’가 눈에 들어온 것은 순전히 그 눈빛 때문이었다. 적장의 목을 베었다는 비장함도 아니고 두려움도 아닌 꿈속 같은 느낌의 당당함이 보였다. 처음에 보이지 않았던 보일 듯 말 듯 옆구리에 끼고 있는 적장의 머리가 슬쩍 보였다. 철저히 유디트가 주인공인 그림이었다. 그 특유의 당당함이 멋져 보였다.


어려서부터 친구들이 새침하다고 기억할 정도로 나는 참 숫기가 없었다. 항상 조용한 나를 보고 엄마는 너무 표현을 하지 않는다며 걱정하셨다. 학교 다녀오면 항상 물어보시는 말씀은 ‘발표했니?’였다.


망설이는 내성적 성격으로 열정을 감추었다. 좋아도 좋은 티를 못 내고 신나도 신나는 티를 내지 못했다. 그런 모습이 어쩔 수 없으면서도 아쉬웠다. 대학 때 내성적이고 순발력 있게 농담도 받아치지 못하는 나를 보고 과 조교선생님은 ‘다크호스’라고 놀렸다. 친구들이 둥글게 앉아 재미있게 노는 놀이에서도 벌칙을 받는 게 쑥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당당함을 동경했다. 나의 아쉬운 모습을 가득 가지고 있는 누군가를 보면 참 좋아 보였다. 고등학교 때 체육대회를 준비하면서 마스게임을 혼자서 이끄는 친구의 리더십 가득한 모습이 참 멋졌다. 대학 때 동아리를 이끌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나서는 친구가 부러웠다.



클림트의 유디트를 보면 여성이라는 연약함이나 자기 민족을 위한 희생이라는 거국적인 의미가 아닌 개인의 당당함이 느껴진다. 여타 뒷이야기를 차치하고 그 모습이 좋았다. 뭐 어때하는 것 같은 시선이 좋았다.


같은 느낌으로 따라 내 얼굴을 찍었다. 뭔가 좀 더 자신감 있고 당당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에 들어서 휴대폰 케이스에 그렸다. 항상 가지고 다니며 볼 때마다 유디트를 떠올린다.


괜찮아, 뻔뻔해져도 돼, 좀 더 당당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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