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1년을 기억해

by 케이론

그림 그리는 선생님답게 아이들에게 그림 선물을 많이 했다. 십 년 전부터 아이들 연필초상화를 졸업선물로 그려주었고 그 이후로도 어린이날이면 아이의 얼굴이 담긴 그림을 그려 선물과 함께 주었다. 연필초상화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작업이어서 너무 바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학교일은 점점 바빠졌고 나도 시간이 많이 드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몇 년 전부터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 작은 드로잉들을 그리면서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활동을 사진으로 많이 남겼고 이른 시간이나 저녁, 내 시간이 날 때 30분 안쪽의 짧은 시간 내에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연필콘테를 들었다. 크기가 큰 작품도, 정성이 많이 들어간 연필초상화도 아니었지만 나도 손이 굳는 걸 막고 아이들의 모습도 남길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1년을 지내다 보니 아이들의 그림이 제법 모였다. 얼굴을 그려주었던 예전보다 아이들의 1년 생활이 더 잘 보였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캘린더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동안 그렸던 아이들의 활동 드로잉 중에서 선별했고 그렇게 우리 반 첫 그림캘린더가 만들어졌다.

2022년의 아이들의 생활 드로잉이 담긴 캘린더. 케이론 제작.

겉표지는 아이들이 미술시간에 했던 핸드페인팅 작품을 조합했다. 너무 마음에 들었다. 종업식 날 받은 아이들도 정말 좋아했고 부모님들께서도 감동이라면 문자를 연신 보내주셨다.


올해도 학년말이 다가왔다. 올해는 그림 그릴 수 있는 여유가 더 없었지만 꾸준한 1년은 뭐라도 남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올해도 20개가 넘는 아이들 활동 드로잉이 모였다. 시간이 없다, 힘들다 하면서도 나는 조금씩 아이들을 그렸고 그림은 아이들과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렸다.

아이들의 1년. 케이론 그림.

운동장 나갔다가 한 아이가 개미를 발견하고 우르르 몰려가 관찰했던 일, 소중히 키웠던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드디어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어 날려 보내던 날,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춤을 따라 추는 모습, 과학시간에 했던 자석놀이, 블루베리 첫 수확하는 날, 학교 주변을 청소하는 우리 반 첫 플로킹, 국어시간에 나오던 전통놀이를 실제 해보던 날 등. 많은 추억들이 캘린더 안에 모였다.



표지는 가을 단풍 관찰하러 운동장에 나갔을 때 함께 발사진을 찍은 모습이다. 알록달록한 낙엽들을 모아 하트를 만들고 아이들은 발을 모았다.

“선생님, 저희들 사진 찍어 주세요!”

내 발도 단체사진 속에 들어갔다. 아주 작은 학교의 아주 작은 인원인 우리 반 모두가 함께 모인 단체사진.


캘린더를 나누어주면서 아이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담았다. 아이들은 캘린더 안의 그림들을 보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맞추었다. 게다가 누구를 그린 건지까지도. 당부를 했다.

“선생님이 그리다 보니 모두를 못 그린 경우도 있어. 물론 누가 누군지 찾는 것도 괜찮지만 우리들의 올해에 어떤 일들이 가득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걸로 보렴.”

“네!”

아이들과 그림을 보며 한참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 저 이거 내년 지나도 절대 안 버릴 거예요!”

“맞아요! 저도 그럴 거예요.”



그래, 그렇게 너희들의 1년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한 날들이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그런 마음을 담은 선생님의 의도를 너무나 잘 알아준 너희들이 정말 고마워.

선생님과는 헤어지지만 점점 성장하는 우리 반 친구들이 되길 바라. 응원할게.


1년 동안 고마웠어, 우리 3학년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