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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Feb 07. 2024

서로의 길, 광장으로

큰아이와 남편은 참 안 맞았다. 작은 각도로 시작한 갈등은 점점 벌어졌고 어느새 용납하지 않는 제방처럼 견고해졌다. 정작 걱정하는 속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서투름은 아이와의 거리를 점점 멀어지게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낯설고 때론 거칠지만 우리가 생각 못 한 자신만의 길을 꿋꿋하게 나아갔다.     


크게 어긋났던 날, 남편이 말했다.

“나는 너를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너무 가슴이 아팠다. 부모가 자식을 용서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을까. 이후 남편은 마음의 불편함을 무관심으로 대체했고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직장에 다니던 아이는 한 해 두 해 지나며 다행히 대화가 늘었다. 남편도 얼굴을 마주쳐도 붉히지 않을 만큼 시간의 혜택이 준 치유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감사했다.      


얼마 전 함께 여행을 갔다. 새벽에 출발해 피곤했을 아이는 친구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직장 이야기, 자신의 겪은 이야기, 그동안 수십 번의 면접을 위해 노력했던 이야기,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겪었던 과정 등 여행지로 가는 동안 4시간 넘게 얘기했다.     


그 속에서 아이가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과 그러면서 성숙해진 생각을 들으면 솔직히 놀랐다. 이렇게 컸구나. 서로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그동안 듣지 못했던 큰아이가 걸어왔던 여정의 흔적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너무나, 잘 자신의 길을 걷고 있음을 느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아주 짧은 1박 2일의 여행이었지만 오가는 8시간 정도의 길 위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고 몇 년 동안의 무관심을 많이 털어냈다.     


여행을 다녀온 후 함께 산책하던 남편이 문득 입을 열었다.

“나는 절대 용서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용서가 될 거 같아.”

영하의 날씨에도 너무나 따뜻해졌다. 용서라는 말이 이해와 인정으로 들렸다. 당신도 힘들었구나. 마음을 바꾸기까지 노력했구나.     


남편과 아이의 길은 서로 닮은 듯 달랐다. 그렇게 이질적인 길을 서로 탓했다. 그렇게 가다 겹치고 부딪히고 꺾이면서 각자의 길로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 되지 못하는 건 시간이라는 축복이 있다. 날카로움이 시간으로 느리게 깎였다. 부드러워진 깨달음으로 다시 만난 길에서는 감사하게도 서로의 광장이 되어 머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광장다운 광장에서 만난 두 사람을 보며 너무나 기뻤다. 나름 남편도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안다. 바뀌기 힘든 사람이 저렇게 달라지기 위해 스스로도 얼마나 마음의 갈등을 견뎠을까 새삼 고맙다.      


이렇게 광장에서 함께 만나 서로를 나누고 교차로처럼 자신의 길로 다시 나설 것이다. 아이와 광장에서 만났다고, 행복하다고 그 상태로 머무를 생각은 없다. 다시 길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손을 흔들어줄 여유가 우리도 생기는 듯하다. 그리고 우리도 우리의 길을 걸을 것이다.  

   

물론 다시 부딪히고 교차되고 멀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한번 맛본 광장의 따뜻함으로 다시 돌아오기가 예전보다 수월해질 것 같은 예감이다. 남편과 이제 그 깨달음을 함께 할 수 있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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