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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Feb 25. 2024

장학증서를 만들었다

큰 아이가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작년에도 그랬다. 고마운 마음이야 크지만 그에 맞는 용돈을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농담반으로 아이가 말했다.

“엄마, 그래도 조금 떼주면 안 되나?”

당장 답을 줄 수가 없어서 듣고만 말았다.


퇴근길에 남편한테 들뜬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아마 큰 아이가 아빠에게도 소식을 전한 모양이다.

“뭐 해 줘야 하지?”

“안 그래도 생각했는데 장학금만큼 다 주기는 너무 부담스러워. 용돈을 별도로 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게 좋겠네. 그럼 주말에 같이 맛있는 거 먹을까? “

 장학금 받은 금액을 형편상 다 줄 순 없었다. 주말에 외식하면서 얘기하고 좀 더 큰 금액을 용돈으로 주기로 했다.


주말이 되었다. 오늘 어떻게 용돈을 전달할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 장학금으로 주자.‘

<우리 집 장학금>

그저 용돈이라고 주면 흐지부지 쓰고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아 이름을 붙였다. 진짜 학교에서 주는 장학증서는 아니지만 느낌이 나도록 장학증서도 따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현금으로 주든 통장으로 꽂아주든 돈은 사라질 테지만 우리 집 장학증서는 추억으로 남을 테니까 말이다.


다행히 다들 오전 내내 늦잠을 자고 있었다. 얼른 물감을 꺼냈다. 두툼한 수채화종이를 봉투사이즈에 맞게 잘랐다. 그리고 물감을 풀어 종이 위에 칠했다. 밋밋하게 글씨만 써있는  게 아니라 받으면서 기분이 좋아지도록 색색의 물감을 올려 만들었다. 인터넷에서 장학증서 내용을 찾아 펜으로 썼다. 금액과 함께. 그리고 잘 말린 후 조심스럽게 봉투에 넣었다.


어느새 다들 일어났다.  준비를 하고 외곽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밥도 맛있게 먹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카페를 검색해서 찾아갔다. 아이들에게 메뉴를 부탁해서 자리에 없는 사이 남편에게 가방에 있던 봉투를 꺼내어 건넸다.

“왜 이렇게 얇아?”

“내가 아침에 장학증서를 만들었어. 그냥 돈을 주는 것보다 기억에 남지 않을까?”

“아, 그래? 생각도 못했네. 좋은 생각이다.”

남편은 옆자리 벗어놓은 옷 밑으로 얼른 봉투를 숨겼다.


잠시 뒤 아이들이 차와 케이크를 들고 왔다.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남편이 봉투를 꺼냈다.

“자! 우리 집 장학금 수여식을 하자!”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봉투 안의 자체제작 장학증서를 살짝 꺼내서 큰 아이에게 전달했다. 큰 아이는 생각도 못했는지 뭐냐면서 종이를 보더니 놀라워했다. 아이들은 웃기다면서도 그 장면을 담느라 다들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그렇게 우리 집 장학증서 수여식이 끝났다. 큰 아이는 봉투를 테이블에 놓고 또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아이통장으로 금액을 이체했다.

“장학금 입금됐다.”

“헤헤, 고맙습니다!”


다들 기분이 좋아져 떠들다가 막내 학원시간이 다 되어가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들은 찻잔과 접시를 챙겨 정리하러 내려갔다. 우리는 느긋하게 먼저 차로 가서 기다렸다. 아이들이 모두 타고 집으로 출발했다. 차 안은 아이 셋의 수다로 가득했다.  


갑자기 큰 아이가 놀라며 소리쳤다.

“어? 나 장학증서 어디 있지? 카페에 놓고 왔나?”

”주머니에 없어? “

“어, 없어. 나 카페에 놓고 왔나 봐. 쟁반정리할 때 테이블에 올려놓을 것 같은데. 다시 가면 안돼?”

큰 딸이 그 장학증서는 꼭 찾아오고 싶었나 보다. 다른 애들도 보물이라도 놓고 온 것처럼 다들 다시 가야 하지 않냐고 난리였다.

“그럼 다시 가지 뭐. 찾아와야지.”

평소 같으면 그냥 가자고 말했을 남편도 군말 없이 다음 신호에서 유턴을 하고 다시 카페로 향했다.


카페 앞에서 급히 내려 들어가니 직원이 발견해 보관하고 있었다. 큰 딸은 다행이라면 찾아왔다.

“아마 현금이나 상품권이었으면 누가 가져갔을 수도 있겠다.”

둘째가 말했다.

“맞아. 이거 우리한테나 의미 있지. 그래서 그대로 있었나?”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도 생일 때면 몇만원귄 쿠폰을 만들어 주었다.

‘이 쿠폰의 금액만큼 엄마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재해 줍니다.’

막내는 그 쿠폰들을 모두 모아두고 있다. 생일선물도 용돈도 다 사라졌지만 축하하는 마음은 쿠폰에 남아 아이들의 보물상자에 담겼다.


큰 아이도 용돈으로 보내주면 사라졌을 이 시간이 우리 집 장학증서로 오래 추억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그 증서에 담긴 축하하는 마음과 온 가족 함께 축하해 주던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봉투를 카페에 두고 와 다시 돌아갔던 에피소드까지도. 그런 마음을 담아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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