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할까?

함께 이루는 행복, 월급날

by 케이론

​"오늘, 치킨 어때?"

퇴근도 하기 전에 온 남편의 문자. 맞다! 월급날이지!

​어차피 금세 스쳐지나갈테지만 그래도 이 날만큼은 푸근하다. 그 기분을 한껏 즐기기 위해 동네 치킨집을 갔다. 저녁준비를 안 해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저녁 겸 먹으려고 치킨과 골뱅이소면을 시켰다. 아이들은 치킨보다 골뱅이소면을 더 좋아했다. 하얀 소면은 매콤한 양념의 골뱅이와 잘 섞어야 제맛이었다. 아이들은 맵다면서도 젓가락을 놓지 않았다. 남편은 골뱅이 사이의 오징어채를 골라 아이들 앞에 놓아주기도 했다. 마지막에 입가심으로 먹는 수박 한 조각도 일품이었다. 어느새 탁자 위를 오가던 젓가락질은 점점 느긋해졌고 접시는 말끔히 비워졌다.

“아, 이제 배부르다!”

봄, 가을이면 실내보다 가게 바깥 탁자에서의 한 잔이 제격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실내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파란 하늘을 기분 좋게 바라보며 맥주 한 잔을 즐기다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가끔 아는 사람이 옆으로 지나가면 인사도 나누었다. 시간이 멈춘 듯, 여유가 느껴지는 그 시간을 참 사랑했다.

푸짐하게 시켜 먹다 보니 문득, 신혼시절이 떠올랐다. 소주 한 병과 해장국 한 그릇.

“생각해 보니 우리 많이 발전했네.”

“그렇지? 예전에 4천 원짜리 뼈해장국 하나 놓고 소주 마시던 거 생각나?”

​17평 지하 전셋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처음엔 별 가구도 없었다. 대출금에, 갖추어지지 않은 살림살이에 어떻게 보면 참 서글플 수도 있는 시간이었는데 그래도 우리는 그저 좋았다.

그 시절의 우리도 월급날이면 집으로 퇴근하는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웠다.

“그래도 오늘이 월급날인데 한 잔 할까?”

빠듯했던 그때, 월급날의 여유는 동네 감자탕집에서의 한 잔이었다.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술안주는 뼈해장국 1인분. 한 그릇 뼈해장국의 구수한 국물을 두 개의 숟가락으로 열심히 떠먹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나는 한 잔, 남편은 여러 잔으로 오가며 하루를 이야기했다. 뼈사이의 살을 알뜰히 발라 끝까지 술안주로 먹었다.

기분 좋게 달아오른 얼굴로 집으로 향했다. 올려다본 까만 하늘도, 빛나던 별빛도, 흔들리던 노란 가로등도 모두 아름다웠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소꿉놀이 같은 살림을 살면서도 함께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많이 부족했지만,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 병의 소주를 나누어 마시고 밤마다 좁을 동네 골목을 느긋하게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이 우리들의 행복도 추억도 차곡차곡 쌓였다.

‘행복한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면 노후에 훌륭한 대비책이 된다 ‘는 크리스토퍼 몰리의 말처럼, 우리도 작은 순간들을 모아 온 것 같다.

좀 투닥거리는 날에도, 함께 이겨내던 예전을 생각하면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조금 가라앉는다. 행복통장의 잔고가 남아 있어 현실이 힘겨울 때, 행복이 부족할 때, 아쉬울 때 꺼내본다. 살아가며 두고두고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나만의 보물상자처럼.

행복한 순간은 월급날 마시는 맥주 한 잔처럼 거창한 일들이 아니라 아주 쉽고 작게 다가왔다. 우리는 오늘도 소소한 순간들을 ‘행복통장’에 차곡차곡 채워가고 있다. 물론 가끔 속상함으로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마이너스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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