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머리색을 바꾸고 왔다. 요즘 유행인 애쉬 그레이란다.
“엄마, 어때? 생각보다 색이 덜 나온 것 같아.”
“이쁘네, 분위기도 있고.”
어울린다고 했지만 딸은 자기 마음에 쏙 들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쉬운 표정으로 방에 들어갔다.
어떨 때는 주황빛이 도는 색으로, 또 살짝 푸른빛이 도는 색으로 염색하기도 했다. 너무 튀지 않은 푸른 그레이색은 나도 탐났다.
‘난 언제 염색을 해봤더라?’
내가 했던 가장 컬러풀한 머리색은 와인색이었다. 대학 때 한창 유행이었다. 긴 머리를 염색하고 다닐 때면 왠지 모를 자신감도 생겼다. 빛에 따라 붉게 번지는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안의 어떤 틀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나중에 보니 우리 과 여자애들 대부분이 같은 색으로 염색했다.
둘째가 머리색을 애쉬나 주황빛, 살짝 푸른기가 있는 색으로 염색을 했을 때 좀 부러웠다. 저렇게 할 수 있는 용기가, 분위기가, 그리고 그 나이가.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걸, 나는 그 나이 때에 왜 그리 변화를 겁냈을까? 딸은 패션을 드러내는 염색을 하지만 이제 나는 가리기 위한 염색을 한다.
나는 이제 패션 염색이 아닌, 흰머리를 가리는 염색을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사실 이미 머리칼의 절반이 흰머리다. 알면서도 자꾸 덮는다. 보름만 지나도 희끗한 머리뿌리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시간이 어찌나 빨리 다가오는지. 볼 때마다 너무 신경이 많이 쓰여 참지 못하고 바로 미용실을 찾는다. 나는 흰머리를 덮지만, 어쩌면 보이지 않게 덮고 싶은 건 시간인지도 모른다.
이미 반백으로 염색 없이 지내는 남편은 나를 볼 때마다 이야기한다.
“뭘 염색을 해? 그냥 자연스럽게 두지.”
“흰머리 나는 거 보기 싫어. 나는 할 거야.”
‘아직은 내가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고.’
아직은 아니다. 더 나이가 들면 혹 모를 일이다.
몇 년 전,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던 강경화 장관을 처음 보았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연설하는 강 장관의 은빛 머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와! 흰머리 그대로가 저렇게 멋질 수 있다니!’
나도 있는 그대로의 머리로 당당하고 싶다. 최근에 많이 등장하는 시니어 모델 중에도 그레이빛의 본인 머리카락을 자신 있게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감탄한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염색을 하고 있다. 언젠가 나도 그 회색빛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날이 올까라는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는 데에 아직 난 용기가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