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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Jul 02. 2023

아네모네

싫어했지만 사랑하게 된

시골에서 개망초나 민들레 같은 들꽃을 보며 자란 나는 아네모네라는 꽃을 알지 못했다. 꽃다발 속의 포장되어 있는 모습으로만 보았지 땅에 심겨 있는 아네모네는 아직도 본 적이 없다. 톱날 같은 초록 꽃받침에 정갈하게 피어있는 아네모네는 왠지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든 도시의 아가씨 느낌이 난다.

 

​"선생님, 체육전담 할 수 있겠어요?"

"네,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선생님이 되던 학교에서 체육전담 교사가 되었다. 솔직히 체육이 자신 있었다기보다 몇 달을 손꼽아 기다려 받은 발령인지라 그 자체만으로도 기뻤다. 그리고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와 열정, 설렘이 가득했다. 나는 드디어 초등학교 교사가 된 것이다.

처음 발령받은 학교는 신도시 분당의 한 복판, 교육열이 대단히 높았던 동네였다. 처음 학교를 찾아가던 날, 시골은커녕 다니던 대학교 근처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고층의 아파트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즐비하게 서 있는 모습에 나는 조금 기가 죽었다. ​외국에 다녀온 아이들도 많았고 부모님들의 관심도 높았다. 애들보다 어설픈 초임교사는 그렇게 6학년을 맡아 고군분투하며 체육과 실과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보다 커다란 아이들을 보며 처음의 열정 어린 목소리는 점점 줄어갔다. 맨 뒤의 아이들이 잘 안 들린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장난치는 아이들도 생겼다. 점점 자신감도 줄어갔다. 154cm의 내가 올려다보아야 보일 남자아이들은 어느새 수업시간에 눈치도 안 보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냥 두어선 안 될 것 같았다. 나를 얕잡아 볼 거야, 혼내 주어야겠어.

쉬는 시간에 남으라고 했다. 수업동안 떠들었던 남자애 셋이 오긴 했지만 죄송한 자세는 아니었다. 별로 잘못이 없다는 듯 장난스러운 자세와 얼굴로 내 앞에 서있었다. 왠지 교사의 권위를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아 화난 말투로 훈계를 시작했다.

"너희들, 수업 시간에 그렇게 떠들고 장난치면 되겠어?"

하지만 나의 예상과 달리 목소리는 작았고 카리스마는 부족했다. 조금은 떨렸을 신규교사의 어설픔을 아이들은 금방 파악했다. 혼내는 소리에도 피식피식 웃음소리는 들렸고 계속되는 훈계는 힘을 잃어갔다. 내 자신감도 함께 떨어졌다. 그렇게 아무런 영향도 못 미치고 나만 상처 입은 채로 아이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돌아서서 그 비참함에 눈물이 절로 났다. 가장 친한 동료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의 소곤거림이 들렸다.

'아네모네, 아네모네 선생님'

처음엔 뭔가 싶어 지나쳤는데 나를 볼 때마다 들리는 소리가 신경 쓰였다.

“저기, 아네모네가 뭐예요?”

 동료에게 물어보았다.

“꽃 이름 아니야?”

 “내가 꽃이라고요? 왜요?”

꽃처럼 예쁘지 않아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던 나는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한 여자아이한테 무슨 뜻인지 슬며시 물어보았다.

"선생님 턱이 네모라서 아! 네모네!라고 하는 거래요."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 얼굴을 놀리는 말이었구나. 화가 났다가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에 창피하기까지 했다. 무능함에 더해 비참함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걸로 아이들한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네모난 뼈에 근육과 살까지 붙어 아이들 말대로 나는 정말 아네모네였다. 네모난 턱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나는 아이들에게 정곡으로 찔린 것이다.

첫 학교의 기억은 그렇게 아이들에 대한 무너진 자신감으로 시작되었다. 분명 나를 잘 따랐던 아이들도 있었고 다른 행복했던 기억도 많았지만 교사라는 정체성에 상처가 남았다. 그래도  나름 이겨내 보려고 아이들 단체 활동도 하고 다양한 수업을 하면서 노력했다. ​차츰 학교생활에 익숙해지고 나만의 노하우가 쌓였다. 그리고 교육철학과 방향을 다듬는 연수를 열심히 다녔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턱이 네모난 것이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게 된 게. 아이들의 어린 반응들이 화나지 않게 된 게. 아마 경력이 쌓이면서 교사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내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서서히 치유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설픈 신규교사의 자신 없음에 외모의 콤플렉스까지 찔렸으니 내 존재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여져 힘들었던 것 같다. 그때는 나를 세울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네모네를 외치던 아이들도 교사로서의 나를 비난하거나 놀림거리로 삼으려는 의도보다는 보이는 모습에 나름 별명을 붙였을 수도 있다. 그때의 나는 그걸 여유 있게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저 내 존재에 대한 거부로만 받아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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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에 블로그를 열었다. 교육에 대한 기록과 다양한 관심사를 담기 시작했다. 블로그 이름을 ‘아네모네’로 정했다. 그 대문의 글귀를 볼 때마다 그때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때의 어린 교사의 모습도 떠오른다. 본질에서 벗어나 휩쓸려 아이들을 오해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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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모네는 그리스어로 바람이란 뜻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소년 아도니스가 죽을 때 흘린 피에서 피어났다고 한다. 어설픈 사냥솜씨로 죽음을 맞이한 아도니스. 어쩌면 나도 어설픈 교사로서 인간으로서 아픔을 겪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걸 아이들로 인해 깨달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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