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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Jun 25. 2023

나를 위한 드로잉 꽃배달을 시작하다

우울을 탈출하기 위한 일주일 동안의 꽃배달

6월 내내 무표정으로 다녔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딱히 극적인 이유도 아니었다.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했고 그 이후 내내 이어졌다. 하지만 그게 원인의 다는 아니었다. 나에게도 갱년기가 오는 건가?


나 자신이 하찮게 여겨지는 것이 못 견디도록 싫었다. 직장이야 페르소나로 가려져 있지만 집에만 오면 가족들이 생활하기 불편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집안일들이 그야말로 족쇄처럼 느껴졌다. 나를 존중하는 느낌은 전혀 없이 그들을 서포트하는 이유로만 존재하는 듯한 이 초라함이 나를 못 견디게 가라앉게 만들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바닥까지 갈 것 같아 이것저것 해보았다. 그렇게 필요도 없는 연수도 찾아 늦게까지 듣고, 홀로 하루 여행도 가고, 걷고, 전시회도 가고, 혼자 영화도 보는 등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잡아당겼다. 애틋한 나를 위해 부단히도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꽃배달 서비스를 신청해 꽃을 볼 때마다 기분이 참 좋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 나도 꽃배달 받고 싶다.’

‘생화가 배달되는 건 돈도 들고 시들면 버려야 할 텐데?’

‘그럼, 시들지 않는 꽃배달을 해볼까?’

‘맞아! 드로잉 꽃배달!’

‘언제 그리지?’

‘일찍 출근하잖아? 7시 30분에서 30분 정도 그릴 수 있는 간단한 그림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나를 위한 매일의 드로잉 꽃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더불어 나를 위로할 만한 꽃말도 함께.



월요일.   <아네모네>-오일콘테

아네모네는 나에게 특별한 꽃이었다. 신규 시절, 사각턱인 나에게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때는 참 싫었는데 어느새 애정이 생겨 블로그 이름으로도 쓴다. <속절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처럼 짝사랑처럼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 교사의 속성인 듯싶다.



화요일 <메리골드>와 <튤립>-네임펜, 오일파스텔

어쩌면 우리는 언젠가 오겠지, 희망이란 마음으로 살아가는 듯하다. 그래야 바르게 삶의 방향을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 가운데 타인에 대한, 자신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서로에게 배려하고 예의를 갖추는 게 가능해지지 않을까. 나도 언젠가 희망이 오겠지?



수요일 <붓꽃> <백장미>-뽀로로 색연필, 오일콘테

요즘 교직사회는 흉흉하다.  단순하게 아이들을 생각하고 자신의 교육철학을 지키고 정상적인 교육 중 부당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에 너무 보호막이 없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없다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일이 없던 나조차도 교사를 끝까지 할 수 있을까 어두운 미래가 떠오른다. 분명 나쁜 일도 있으면 좋은 소식도 들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려보았다. 그리고 이 와중에 애쓰는 동료샘들을 떠올리면 존경의 의미가 담긴 백장미를 그려본다.



목요일 <마트리카리아> , <빨간장미>-박스에 오일파스텔, 뽀로로색연필

꽃을 좋아하시는 분이 마트리카리아는 꽃다발에서 다른 꽃을 받쳐주는 배경꽃으로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작고 소박한 꽃이지만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이라는 꽃말처럼 오래가는 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끔은 붉은 장미처럼 강렬한 열정도 필요함을 느낀다. 열정이 사라진 삶, 얼마나 무료해질까. 삶에 열정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늙는다고 한다.



금요일 <금계국> -뽀로로색연필

금요일이다. 어느 직장인이 금요일을 싫어하겠는가. 5, 6월의 들판을 가득 채우는 금계국의 꽃말처럼 상쾌한 금요일이었다.



토요일 <수수꽃다리-라일락> 오일콘테, 오일파스텔

토요일 아침. 각자 볼일이 있어 가족들은 나가고 나 홀로 주방 식탁에 앉아 있다. 내 마음속에 사랑의 불씨가 꺼져가고 있는 것일까. 나의 고갱이 불씨마저 사그라지지 않도록 애쓴다. 애쓰는 내가 안쓰럽기도 하다.  숨길 수 없는 <사랑의 시작>이란 꽃말처럼 멀리서도 은은하게 스며드는 라일락 향기. 그래 다시 시작해 볼까.



일요일 <민들레> <목련> -수성크레용, 오일콘테

이렇게라도 노력하는 나 자신이 감사하다. 나를 놓지 않으려 노력하는 내가 기특하다. 그렇다. 나는 소중하고 고귀하다. 그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이렇게 일주일간의 드로잉 꽃배달이 끝났다. 지금 마지막 꽃배달을 마치고 일주일을 돌아본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으로 나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이 있어 감사했다. 선 하나하나를 천천히 그리면서 나의 마음도 정돈했다. 꽃배달 보낼 꽃을 꽃말과 함께 찾으며 좋았다. 위로가 되었다.


물론 일주일 동안의 드로잉 꽃배달로 우울을 완전히 탈출하진 못했다. 기분은 아직 저 아래이고 내 존재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하지만 적어도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을 끌어올려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그릴 대상을 찾고 그리는 동안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아마  드로잉 꽃배달은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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