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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Jul 15. 2023

구름이 지나가지 못하는 이유

가벼워지기 위해 쏟아낼 시간이 필요하다


분명 집에서 출발할 때는 날이 많이 흐렸지만 비가 오진 않았다. 잠시 신호등에 걸려 시선을 앞에 두니 저 멀리 지하철역 바로 뒤에 있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언제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흐린 날이긴 했다. 3~40층은 되어 보이는 아파트 꼭대기에 묵직한 구름 띠가  뿌옇게 걸려 있다. 마치 재크와 콩나무에 나오는, 콩나무에 뚫린 하늘처럼.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날씨일 때마다 밖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초록 신호등에 따라 다시 차를 움직였다.


고층 아파트 단지를 지나기 위해 좌회전을 하는 순간  쏴아아 아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 정말 양동이로 쏟아붓듯이 와이퍼를 최대로 움직여도 앞이 안 보인다. 덜컥 겁이 나 속도를 줄이고 비상등을 켰다. 한 500미터쯤 갔을까. 거짓말같이 비가 줄었다. 백미러로 보니 지하철역과 아파트 주변이 비로 인한 비말로 하얗게 덮여 있다.


출퇴근 길에 벌써 세 번째 같은 현상이다. 며칠 전에도, 또 며칠 전에도 이곳만 가면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쏟아졌다. 그런데 조금만 더 가면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비가 그쳤다. 마치 그곳에만 묵직한 비구름이 묶여 있는 것처럼. 답답하게 목구멍에 뭔가가 탁 걸려 있는 것처럼.


정신없이 출근하던 중에 갑작스러운 엄마의 전화. 그리고  비 오는 오늘, 이 비를 뚫고 현장체험학습 답사를 다녀오는데 다시 걸려온 엄마의 목소리.

“아침은 먹었니?”

“아유, 이런 날씨에 꼭 가야 하는 거니? 다들 난리던데.”

“비 많이 오던데 괜찮니?”

“조심해서 다녀. 너도 이제 건강 챙기고.”

그 순간 토독토독 비가 시작되듯  눈물이 고인다. 목이 멘다. 앞이 안 보여 잠시 멈추었다.  저 마천루에 걸려 쏟아지는 비처럼 갑자기 감정이 폭풍우처럼 몰려온다.


아무것도 없었으면 그저 지나갔을 비구름이 고층 아파트를 만나 버거운 무게로 가득 찼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두텁게 쏟아낸다. 갑자기 시작된 소낙비처럼 아무도 묻지 않았다면 그저 평소와 마찬가지로 지나쳤을 순간,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엄마의 걱정 가득한 한마디에 감정이 북받쳐 오는 나를, 내가 느낀다. 누군가를 돌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린 나이가 되었어도 보살핌은 필요하다. 나로 인한 돌봄은 나를 향하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눈물을 훔치고 다시 운전대를 잡고 일상으로 움직인다. 쏟아내니 조금 마음이 가볍게 힘이 난다.

쌓인 것이 많아 며칠 내내 폭우를 쏟아내는 저 구름도 이제 가벼워져 다시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흰구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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