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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Aug 02. 2023

그녀들

어디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있다는 것


엄마는 6남매 중의 셋째다. 그 옛날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무거운 걸 너무 많이 들어서 키가 안 컸노라 하시는, 작은 나보다 더 작은 엄마이다.


​엄마의 언니인 큰 이모도 못지않다. 이제 팔순이 넘으셨으면서 차로 간신히 들어가는 기슭에 콩이며 고추며 농사일을 여전히 혼자 지으신다. 엄마는 몸이 부서져라 일하시느라 허리를 펴고 하늘 보기를 힘들어하시는 이모를 항상 타박하면서도 안쓰러워하셨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 생기면 엄마는 이모를, 이모는 엄마를 챙기셨다. ​


"엄마, 어디 바람 쐬러 갈까?"

​오랜만에 혼자서 친정을 갔다. 전날 엄마께 미리 전화를 드리니 큰 이모도 함께 가자고 하신다. 그동안 바깥 활동을 못 하셨을 이모도 함께 가자고 전화를 드렸다. 처음엔 집에 있는 누렁이 밥걱정에, 손에서 놓지 못하는 농사일에 못 간다고 하셨던 이모도 엄마의 성화에 마음을 바꾸셨다.

"허리가 너무 아파 몇 발자국 못 걷어. 내가 가면 니들이 제대로 못 구경할 텐데……."

걱정하시는 이모의 손을 엄마는 잡아당겨 차에 태우셨다.

“괜찮아요. 천천히 다니시면 되죠.”

"그냥 바람 쐬는 것만 해도 좋다."

차창밖의 풍경을 보며 엄마와 이모의 수다는 시작되었다.

산책길이 좋다는 청남대로 향했다. 경사도 별로 없고 느긋하게 시원한 바람을 쐬며 산책할 수 있는 곳이어서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나무터널을 한참 지나 드디어 청남대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첫 건물이 있는 곳을 들어서기도 전에 이모가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이모는 정말 100m가 아니라 10m도 한번에 걷지 못하셨다. 허리와 다리가 매우 편찮으신 이모는 몇 발도 못 옮기시고는 멈추시고 숨을 몰아쉬셨다. 다시 몇 발자국 걸으시다 멈추고 허리를 펴셨다. 그런 이모를 먼저 걸으시던 엄마는 수시로 뒤돌아 기다려주셨고 이모는 아픈 몸 이끄시고 그 뒤를 따라가셨다.



30m 나 갔을까?

"얘, 엄마는 돌아다니면 덥기도 하고 그냥 여기서 이모랑 얘기나 하면서 쉬련다."

엄마는 근처 평상을 보고 이모와 눌러앉았다. 너라도 둘러보고 오라는 말씀에 두 분이 이야기라도 하시라고 두고 혼자 산책을 나섰다.​


안쪽에 매점이 보였다. 들어가 보이니 기념품과 간단한 간식들을 팔고 있었다. 음료수 세 개를 사서 다시 엄마와 이모가 계시던 평상으로 돌아왔다.

"왜 벌써 와?"

"그냥."

결국, 그렇게 음료수 하나씩 마시고 선선한 바람 사이로 두런두런 엄마와 이모의 이야기를 듣다가 청남대 입구만 찍고 다시 돌아 나왔다. ​이모 댁 근처의  맛집에 들러 편히 저녁을 드시는 걸로, 별로  한 것 없지만 따뜻했던 여행은 마무리가 되었다.​​


식사 후 이모 댁 근처 도담삼봉에서 두 분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시는 동안 나는 커피 한 잔 마시며 일부러 조금 떨어져 앉아 두 분을 지켜보았다.


엄마도 나의 엄마이기 전에 존재하는, 본인으로 동생으로 자신의 친정 언니한테 투정도 하소연도 수다도 맘껏 떠시라고, 모든 둘러싼 의무들은 잠시 잊고 엄마 자신으로 잠시나마 느끼시겠지. 두 분이 나누시는 대화는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그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엄마와 이모의 구부정한 뒷모습에서 고단함과 세월이 느껴졌다. 너무 늦기 전에 조금이나마 두 분이 이렇게 나란히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드려야겠다. 불혹이라는 나이가 넘어서야 그녀들의 뒷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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