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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Aug 08. 2023

커피로 수혈하다

우리에게 무엇이 허용되어 있을까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자주 마신다. 특히 따뜻한 아메리카노. 카페에 가면 마시는 단골메뉴다. 커피가 주는 휴식의 느낌, 여유의 느낌도 좋다.


학교에서는 항상 믹스커피를 마신다. 매일 아침 한 번, 그리고 때로는 오후에 한 번 더. 위가 안 좋아 커피를 줄여야 하는데 잘 안된다.  

직장에서의 커피는 정신 차리기 위해 마실 때가 많다. 아침에 정신없이 출근하고 먼저 무선주전자의 전원을 켠다. 물이 끓을 때까지 교실 문도 열고 청소기로 교실바닥을 한 번 돈다. 부그르르 끓어오르던 물소리가 멈추면 믹스커피 봉지를 뜯어 약을 제조하듯 뜨거운 물에 탄다. 아침 믹스커피는 멍한 두뇌를 각성시키기 위한 필수다. 한 잔 마시면서 두뇌와 몸을 일하는 교사 모드로 전환시키며 하루를 시작한다. ​


그래서 믹스커피는 아침에 학교에서만 마신다. 다른 곳에서는 잘 마시지 않는다. 믹스커피는 나라는 직장인의 하루를 여는 신호와 같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공문을 보고 처리하고 수업준비를 한다. 아이들이 등교할 때쯤이면 이미 교사 모드 장착이다. ​


방광염이 직업병이라고 자조하듯이 화장실 갈 틈도 없다. 그렇게 정신없이 아이들과 하루를 보낸 후 하교 시키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한 수혈. 믹스커피 한 잔. 다시 업무 모드 돌입. 설탕도 들어간 걸 싫어하는 아메리카노파인 내가 유일하게 믹스커피를 마시는 때는 학교에서다. 내돈내산이라 믹스커피 상자가 비어 가면 불안하다. ​


아마 많은 선생님들이 나와 같을 거다. 아침의 커피는 카페인 수혈로 정신 차리고 직장인 모드 전환하기, 오후 커피는 아이들과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잠시 여유를 찾거나 오후 업무를 위한 준비. 요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음료처럼 마시기도 하니까. ​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서글픈 기사를 보았다.

‘교사, 교실에서 커피 마시면 안 된다, 애들 따라 해’

교사가 교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커피를 사서 마셨고 교사가 모범을 보이지 않아서라고, 교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이 된 일화에 대한 기사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맥이 풀렸다. 이제 우리는 기호식품도 아이들에게 보인다는 이유로 금지되어야 하는 건가. ​


분명 아이들은 어른의 영향을 받는다. 아이들이 매일 접하는 교사의 경우 그래서 품행이 바르기를 당연히 바란다. 그래서 품위유지의 의무라는 법률적인 항목도 있다. 하지만 모방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모든 것이 영향을 준다는 말이 절대적이라면 교사는 아동의 이상적인 모습과 일치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사가 커피를 마신다고 따라 했다면 그 순간에 어른만이 할 수 있어서 따라 하면 안 되는 행동을 부모가 가르쳐주면 된다. 그게 교육이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지어주는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다. ​무조건 아이를 보호하고 아이는 생각이 없는 존재로 만들고 감싸기만 한다면 아이들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놓치는 것이다. 그 또한 중요한 교육의 순간일 텐데. ​


아이들 앞에서는 따라 한다고 숭늉도 못 먹는다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도 잠재적 교육과정의 효과를 인정한다. 정규 교육과정로 의도하진 않았지만 선생님과, 학교, 또래의 행동이나 말 등을 통해 은연중에 배운다. 그래서 그것까지도 고려한 학교운영, 학급운영을 한다.

하지만 커피를 배운다는 건 억지다. 그렇다면 집에서도 엄마, 아빠가 커피나 술도 마시면 안 되고 스마트폰도 하면 절대 안 된다. 화내는 모습도 내면 안되고 밤늦게 자는 것도 안된다. 아이가 배우니까. ​


모범을 보여 배우는 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아이는 인간이다. 인간은 말로 설득으로 배울 수 있다. 경계를 보여주며 가르치면 충분히 배운다. 그러니까 인간이다. 이번 커피 기사와 같은 경우 그대로 인정한다면 그것은 아이를 배움으로써 교육이 되지 않는 어린 아기 취급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커피를 마시는 것은 좀 더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교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https://n.news.naver.com/article/comment/018/0005529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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