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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Nov 06. 2023

서로 존중하는 관계에 대하여

우리 아파트는 단지 안에서 출발하는 마을버스가 있다. 우리 아파트가 종점인 데다 지하철역까지 편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자주 이용한다. 작은 버스라 열댓 명만 타면 만차다.


그날도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일찍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에 올라타면서 카드결제를 하고 기사님께 가볍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기사님은 이미 버스에 타신 어떤 분과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셨다.


“아니 글쎄, 지난번에는 어떤 아주머니가 버스를 타더니 사과 하나를 주는 거예요. 근데 그게 뭔 줄 알아요? 방금 봉투에서 굴러 떨어진 사과였어요. 그러면서 뭐라 하는 줄 알시오? 고맙게 받으래요. 이게 말이 됩니까? “

운전석 바로 뒷좌석의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쳐 주신다.

“에고. 기분 나쁘셨겠다.”

“그러면서 팁이랍디다, 참.”

혀를 차시며 기사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버스 운전하다 보면 얼마나 더러운 꼴을 많이 당하는지. 아니 지난번에는 어떤 사람이 붕어빵 봉투를 내밀면서 하나 먹으라네요. 딱 하나만 가져가래요. 그 말투 아시죠? 적선하듯이. 뭐 내가 운전한다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달라고 했답니까? “

“아니, 그리고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는데 뭐 아랫사람한테 얘기하듯이 반말로 하는 경우는 무어랍니까?”

“사람들이 점점 그래요. 참 예전엔 안 그랬는데 점점 더 야박해지니 저도 인사하고 싶지 않습디다.”

“나도 좋은 마음으로 친절하게 대하려고 하는데 그런 일 겪고 나면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들어주는 분이 계셔서인지 속상하셨던 에피소드를 한동안 쏟아내셨다. 정말 듣는 내가 속상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작은 마을버스다 보니  모르긴 몰라도 버스 안의 사람들은 조용히 귀를 쫑긋하고 다 듣고 있었을 것이다.

“인사하는 것도 그래요. 예전엔 제가 먼저 인사하면 손님들이 인사하면서 받아주셨는데 요즘엔 인사해도 그냥 띡 카드만 찍고 받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잘 보시요, 어떤가.”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다. 기사님 말씀을 들은 후여서인지 정류장에 내리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모두 인사를 하고 내리셨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새로 승차하는 분들 중 기사님께 인사를 하는 사람은 열 명 중 2명쯤 될까? 정말 그랬다.

지하철 정류장에 내리면서 나도 인사를 드렸다. 평소에 하던 인사인데도 기사님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왠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기사님의 이야기가 계속 맴돌았다.


약속장소로 가면서 내내 생각을 했다. 무례하게 행동했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했을까? 내 돈을 받는 사람이니 내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그조차 생각하지 않는 걸까?


갑질. 우리가 흔하게 듣는 그 말. 보통 서비스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말이다. 누가 갑이며 누가 을이란 말인가.


서비스업은 우리가 힘들거나 번거롭거나 능력이 안 되는 분야에서 재화적 비용을 지불하고 대신 그 일을 해달라는 직업이다. 비용과 해당 서비스는 서로 상쇄된다. 시장주의 경쟁 사이에서 소비자 위주의 친절이 기본값처럼 어느 순간 자리 잡았다. 그런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 어느새 그조차도 비용 속 서비스에 당연히 들어있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내가 편하기 위해 상대의 수고를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상대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존중조차 지켜주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되면 참 슬픈 생각이 든다. 손님은 왕이 아니다.


서비스를 받는다고 서비스를 하는 그 사람까지 포함되는 건 아니다. 서비스와 재화를 서로 주고받은 것일 뿐이다. 거기에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 예의가 더해진다면 아름다운 거래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서로 좋은 마음을 남기며 이루어지는 거래라고 생각하면 눈살 찌푸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서로 고마운 사람이지 않은가. 내가 필요한 서비스를 해 주는 사람, 내가 돈을 벌게 해 주는 사람.

“(태워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본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기본으로, 돈을 벌고 서비스를 받는 각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상대를 고맙게 여기는 태도로 갑을사건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거기에 더해진 친절은 감사히 생각하자. 친절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하자. 감사를 모르는 사회,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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