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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Nov 08. 2023

익숙하지 않은 것을 대하는 법


나는 원래 모험을 좋아하지 않았다. 낯선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부담을 받고 싶지 않아 되도록 안전한 길을 택했다.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모든 것을 했다. 친구와 얼떨결에 신청한 자격증 시험을 보던 날 아침, 떨어지는 게  두려워 늦잠을 잤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포기한 적도 있었다. 무던하게는 지냈지만 다양한 경험도 많지 않다.


대학 3학년 때 동아리방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보던 어느 날, 뒤통수를 치는 문구를 보았다.

‘네가 닿지 않는 것에 선의를 갖고 대하면 언젠가 그것이 네 것이 된다’

 니체의 말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호의를 가지라고 한다. 나에게 낯선 것들은 불편했다. 되도록 피하려 하고 외면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호의를 가지라고?


이후 그 말이 계속 마음속에 맴돌았다. 굳어있던 내 안의 무언가를 자꾸 두드리는 듯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이 문구는 내 삶 전체를 관통하며 뒤흔든 지표가 되었다. 주어진 것만 그저 했던 나를 어느 순간 변화시켰다. 조금씩 익숙하지 않은 상황, 경험, 기회를 받아들이려 노력한 것이다. 망설임이 끼어들어 불편함을 느끼기 전에 바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도한 경험은 사람들 앞에서의 기타 연주였다. 기타 초보가 신입생 후배들 앞에서 연주를 하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무척이나 내성적인 나에게는 해보겠다는 말부터 많은 용기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너무 쑥스러웠지만 꾹 참고 어설픈 나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두려움보다 기분 좋았던 느낌이 오래 남아있다.


이후 마음속으로만 바라보던 시도를 망설임이 들어오기 전에 바로 하고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도했다. 주저하던 책임 있는 자리를 맡기도 하고 혼자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았던 음반녹음도 해보고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제안도 받아들였다. 혼자를 좋아했던 내가 기회가 닿은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내 성향과 다른 모임도 가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두렵지 않았고 생각보다 잘 해냈다.


물론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때로는 결과가 완벽하지 않아도 시도해 본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다른 기회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주문처럼 말했다.

“해보지 뭐!”

이전의 나라면 하지 않거나 머뭇거렸을 것이다. 포기하고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더라도 그대로 던져보았다. 이전보다 바빠졌지만 뭔가 깨어있는, 살아있는 느낌이 좋았다. 예상치 못한 확장된 경험을 하기도 했고 ‘나’를 뛰어넘은 내가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졌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고요가 생겼다. 다가오는 환경을 긍정하게 되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기엔 별거 아닐 수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대단한 도전을 하고 획기적인 성과를 거둔 곳은 전혀 아니다. 작디 작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작은 새로움도 귀찮다는 핑계를 대며 하지 않았던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삶의 큰 나침반이 서서히 움직였음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나에 대한 스스로의 선입견을 깨는 순간들이었다. 남들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수 있는 것이지만 그동안 지레 겁먹고 포기하고 지나쳐 버린 것들이 많았다. 나를 둘러싼 벽을 깨는 건 참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낯선 것들을 받아들인 이후 더욱 나를 믿게 되었고 결과를 떠나 ‘시도하는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결과가 예측되는 건 안전하다. 내가 예측가능한 능력만 수행하는 것이니까 당연히 안정적이다. 하지만 그 범위 내에만 머무른다. 누구든 처음 겪는 경험은 두렵다. 불완전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나에게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미리 알지 못하는 낯섦에 대한 도전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생각과 경험의 틀에 갇혀 새로움과 낯섦을 거부한다면 삶이 안정될지언정 새로운 나를 만날 기회를 놓친다. 나도 모르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지금도 무언가 새롭게 하는 것에 두려움이 많이 줄어 시도해 본다. 망설였던 그림 모임도 용기 내어 만들었다. 목소리가 좋다는 말에 무모하게 목소리 기부도 해보았다. 미루었던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그림도 시도했다. 그걸로 일러스트도 그렸다. 사람 만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다양한  모임에 들어가 활동을 한다. 잘 못할 것 같아 거부할까 하다가도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를 내놓는다.


여전히 나는 새로운 경험들을 마주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의 내 마음과 행동, 성인으로 커가는 내 아이에 대한 낯선 경험, 나이 들어가는 나에 대한 변화, 어설픈 인간으로서 좌우로 흔들리는 내 모습에 대한 직면,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 등. 모르거나 두려워하는 영역도 여전히 많이 있다. 지금도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항상 내가 낯선 경험에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을 때마다 니체의 이 말을 떠올린다. 그럼 좀 더 용기가 난다.

‘네가 닿지 않는 것에 선의를 갖고 대하면 언젠가 그것이 네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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