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론 Oct 03. 2023

결혼식

바라보는 시선의 끝

"선생님, 저 결혼해요!"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았던 9월의 어느 날, 몇 년 전 함께 근무했던 동료 선생님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학교를 옮긴 뒤여서 오랜만에 뵙는 분들이 많아 반가웠다. 여느 결혼식과 달리 주례사를 하시는 분도 없이 신랑신부의 결혼서약으로 시작되었다. 신랑신부는 나란히 서서 여러 친지와 손님들 앞에서 앞으로의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겠노라 서약서를 환한 미소와 함께 낭독했다.


화사하게 예쁜 신부와 멋진 신랑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문득 테이블 바로 앞의 부모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세상의 온 빛이 뿌려지는 듯, 신랑 신부를 향해 환해진 중앙으로 인해 부모님의 뒷모습은 더욱 칠흑같이 보였다. 가장 밝은 모습의 새로운 부부와 표정을 알 수 없는 부모님의 까만 뒷모습. 보이진 않았지만 두 분의 시선이 당연히 이제 막 시작하는 신랑, 신부의 모습에 하염없이 머무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가끔 손이 눈 주위에 머무르기도 하고 신부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등을 토닥이기도 했다. 마음이 찡해 계속 그 부모님의 뒷모습에 눈이 갔다.


문득 20여 년 전 나의 결혼식이 떠올랐다. 12월을 얼마 남겨 두지 않았던 날, 2년여의 연애 끝에 한 결혼이었다. 나는 이제 신규교사로 첫 부임했고 남편은 아직 대학원생이었다. 안정적이지도 않은 상황 속에서 뭐가 좋아 그리 빨리 결혼했을까 싶게 마냥 행복했었다.


12월의 날씨답지 않게 따뜻하고 포근했던 날이었다. 그날의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기쁨에 주변이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콩깍지가 씌어 있었다고 해야 하나. 엄마 아빠의 모습도, 아쉬워하는 친구들도, 축하해 주는 친지들의 모습도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마냥 좋아서 웃던 나에게 엄마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아빠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기만 했던 철없는 딸이었다.


아마 그때의 엄마도 아빠도 지금의 저 두 분처럼 부모석에 앉아 하염없이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겠지. 철없이 웃기만 하던 웨딩드레스 입을 딸을 보시면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결혼하면 저것이 제대로 밥은 해 먹고 다닐까, 시부모님께는 살갑게 잘 대해 드릴까, 살림은 어떻게 알뜰하게 살려나 하염없는 걱정과 안쓰러움으로 나를 보셨겠지. 그때 미처 몰랐던 부모님의 마음을 이제서 다른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느낀다.


생각해 보니 내가 결혼할 때 엄마가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기껏 나와 두어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그때의 엄마는 벌써 딸을 결혼시킨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감히 부모의 마음이 가늠되지 않는다. 아직도 난 철없는 딸 같은데, 엄마는 그 나이쯤 나를 결혼시키다니. 그 때 어떤 마음이셨을까.


이제 신혼부부는 양가 부모님 앞에 인사를 드리러 단상에서 내려왔다. 환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신부와 세상을 얻은 듯한 신랑의 감사하다는 호탕한 외침과 달리 부모님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저 지켜보고, 인사를 드리는 신랑을 한껏 껴안아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다시 눈 주위에 손이 가만히 머물렀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우리 부모님은 전혀 반대의 말씀을 하지 않았다. 이제 와 생각하면 참으로 신기하기도 한 일이었다. 결혼을 해야만 하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저 딸이 하겠다고 하니 허락해주신 것이다. 이미 안정된 직장을 가진 딸이 아직 졸업도 안한 사람과 살겠다는데 어느 부모가 앞날을 걱정하지 않았으랴. 하지만 엄마, 아빠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나중에 동생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엄마는 많이 서운해하셨다고 한다. 첫째인 내가 이제 막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해 힘든 친정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는 여력이 될 만하니 결혼을 해버렸다고 아쉬워하셨다고 했다. 그것도 전혀 몰랐다. 나에게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만약 나와 같은 상황이 내 딸에게 벌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우리 부모님처럼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다려주고 인내하며 바라보기만 해 줄 수 있을까? 아니다. 나는 절대 그렇게 못 할 것 같다. 비슷한 나이였는지 모르지만 나의 부모님은 지금의 나보다 더 어른이었다.


나도 이제 마냥 신부를 부러워할 나이가 아닌, 부모의 뒷모습이 눈에 더 들어오는 나이가 되었다. 그 마음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 나이가 되었다.  예전엔 결혼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이유도 모르고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이제는 부모의 마음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가슴이 조이며 괜스레 앞이 흐려진다.


결혼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어도, 엄마 앞에서는 그저 딸일 수밖에 없다. 항상 무슨 일 없나, 애들은 괜찮나, 밥을 잘해 먹고 다니나 항상 하시는 걱정을 매번 또 하신다. 부모님의 시선은 항상 그렇게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향할 수밖에 없나 보다.


아이가 커가니 나도 조금씩 느낀다. 나의 시선은 내 아이들에게 더 향해 있다. 나의 엄마 아빠에게는 부족하지만 그렇게 나도 부모라는 무거운 자리를 지키는 방법을 알아 가고 있다. 한쪽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저 신부의 부모님처럼 한없는 사랑으로 끊임없이 지켜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내가 그랬듯, 우리 아이들도 그런 애정의 시선을 받고 건강히 자라고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자신의 삶을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도 그들의 아이에게 그런 시선을 보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서히 스미는 것-시간이 걸려도 가끔 멈추어도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