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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Oct 07. 2023

초능력

무엇이든 가능한

사회적인 어른이 되어서도 한참 동안은 천진난만하게 아이 같은 꿈을 많이 꾸었다. 아무 장치 없이 물속 깊은 곳까지 숨 쉬며 고요하게 잠수하기, 마음만 먹으면 훌쩍 떠올라 하늘 높이 날아다니기, 특히 마음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염력에 대한 꿈을 자주 꾸었다. 왠지 이런 아이 같은 꿈을 꾸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염력. 정신을 집중해서 직접 손을 대지 않고도 물체의 위치를 옮기는 능력이다. 꿈속에서 염력을 할 때면 손가락을 쭉 뻗고 집중하여 에너지를 모은다. 그리고 손을 들어 뚫어질 듯한 시선을 물건에 집중한다. 움직일 때까지 뻣뻣하게 힘이 들어간 손가락으로 대상을 노려본다.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조금씩 물건이 움직이고 어느 순간 훅 원하는 위치로 옮겨진다. 그 순간이 얼마나 짜릿하던지. 물론 꿈속에서.


깨고 나면 참 허무맹랑한 꿈이었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할 수 없는 걸 해봤다는 통제감. 물체의 움직임을 물리적인 접촉도 없이 옮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가. 꿈속에서라도 그걸 경험해 보는 건 온 몸으로 그 느낌이 기억되었다. 때로는 남에게 들킬 필요도 없이 상황을 바꿀 수도 있고, 어쩌면 사람도 사물이니 내 맘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손대지 않고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짜릿함. 인간이라는 한계, 물리적 법칙을 넘어서 뭐든 할 수 있는 능력의 확장.


물론 생각이나 의지만으로 물질을 공간이동 시킬 수 있다는 건 불가능하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신비하고 매력 있는 초능력이다. 최근 인기 있는 <무빙>이라는 드라마에서도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인물들의 서사가 중요한 내용이지만 그 사이를 메꾸는 매개인 초능력 이야기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좋아하는 영화 <마블> 시리즈에서도 각기 각색의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나와 시원스럽게 상황을 정리한다.


사람들이 초능력을 동경하고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의 반대여서일 것이다. 실제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니까. 그로 인한 좌절도 많고 한계에 부딪히면서 실패하고 무릎 끓고 포기하는 경우가 크고 작게 많다. 그래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초능력으로 시원스럽게 해내는 히어로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대리만족을 느낀다.


최근 온라인에서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대해 정신과 의사들이 나눈 대화를 인상 깊게 들었다. 인간은 만 5~6세가 되면 마술적 사고가 사라진다고 한다. 마술적 사고는 상상 속의 친구가 있고 인형과 대화를 하고 동화 속 이야기를 믿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그 상상의 일들을 믿지 않게 되는 시기가 만 5~6세인 것이다. 자연스러운 인간 정신의 발달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믿고 행동하기도 한다. 그 단순한 순수함이 깨지는 시기인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아이들이 더 행복한지 모르겠다. 뭐든지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고 진짜 믿으니까.


어쩌면 진정한 어른이 되어 간다는 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현명하게 구분해 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그 뼈아픈 현실을 점점 알아가는 과정이 어른으로 나아가는 길이 된다. 서글프기도 하고 인간이라는 미미한 존재에 대해 무력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 인간에 대한 연민도 함께 생긴다. 불완전함에 대한 연민.


가끔 꿈 속이든 히어로들이 날아다니는 영화에서든 그렇게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럴 때 영화, 책, 드라마 등으로  순수했던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 빠듯한 현실에 너무 매몰되어 힘들다면 저 무의식 어딘가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인사이드 아웃>의 ‘봉봉’을 만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아이의 시절, 생각만 해도 마음이 순수해지는 그 시절로 잠시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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