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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Oct 07. 2023

케이론이 뭐예요?

또 다른 정체성, 닉네임에 대해

나의 온라인 닉네임은 케이론 chiron이다. 이 닉네임을 쓴 게 벌써 25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 들은 사람은 우선 발음을 잘 못 듣고 다시 들려주면 그게 무슨 뜻이냐고 궁금해한다. 그 시작을 떠올리기 위해선 한참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시작은 지금 아이들은 전혀 모를 하이텔, 천리안 시절이었다.


초임 발령으로 첫 학교에 갔던 나는 당시 한창 구축 중이었던 학교 정보화 사업의 업무를 맡아 PC통신을 접했다. 지금의 인터넷과는 달리 전화선을 끌어와 컴퓨터에 연결하면 뚜뚜뚜, 삐~ 소리와 함께 모뎀에 접속된다. 파란 바탕의 뚱뚱한 모니터 안에서는 하얀  텍스트가 보이고 명령어를 기다리는 작은  커서가 깜빡인다. 전화 모뎀이다 보니 느리고 많이 사용하면 요금이 왕창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요즘과 달리 텍스트 명령어로 모든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다. 뭐든 호기심으로 처음 접하면 홀딱 빠지던 나는 한창 PC통신에 빠져 동호회도 하고 정모까지 갔다. 한동안 온라인으로 연결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처음 동호회를 하면서 닉네임이 필요했다. 나름 나를 표현하는 거라 뭘로 정할까 고민하다가 그즈음 읽고 있었던 그리스 신화 책에서 찾은 닉네임이 케이론이다. 이 별명을 이토록 오랫동안 사용할 줄은 몰랐다. 이제는 거의 이름처럼 쓰이는 별명이자 어쩌면 브랜드처럼 또 다른 내가 되었다.


케이론 chir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켄타우루스다. 케이론은 크로노스의 아들로 다른 켄타우루스와 출생이 달랐다.  의술과 예언, 음악, 사냥 등에 뛰어나 헤라클레스와 아스클레피오스, 이아손, 디오스쿠로이, 아킬레우스, 악타이온 등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영웅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내가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많은 영웅의 스승이었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참 엄청난 의미를 마구 담았다. 희망 넘치는 새내기 교사였으니까.


온라인상의 닉네임은 익명성을 위해 자신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특성을 도드라지게 드러낸다. 그 특성이 현재의 상태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희망사항을 담아 정해지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후자였다. 신규교사였던 나는 미래의 작은 영웅들이 될 아이들을 가르치는 멋진 스승이 되고 싶었다. 너무나 원대하고 이루어질까 싶은 꿈이라 처음엔 무슨 의미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게 대단한 선생님은 전혀 아니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 기준으로 남아 영향을 주고 있다. 남에게는 적당히 낯설면서 나에게 깊은 의미가 있는.


요즘엔 닉네임이 브랜드가 되기도 한다. 나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케이론이 알려졌고 케이론샘이라고 불렸다. 대부분의 sns 닉네임으로 사용하면서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이름, 케이론은 자연스러워졌다. 코로나로 인해 수업영상을 올리던 유튜브 채널도 자연스레 케이론샘으로 정했고 실명을 쓰지 않는 이상 대부분 이 닉네임을 사용했다.


요즘에는 닉네임을 정할 때 나와 같은 의미부여도 있지만 별 의미 없이 정했다가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이름보다 더 많이 불리기도 하면서 그 사람을 표현하는 간판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누군가의 닉네임을 보면 왜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궁금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 사람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니까. 요즘처럼 온라인에서 활동하고 sns 친구가 더 익숙한 시대에 상대의 닉네임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건 새롭게 대상을 알아가는 재미있는 방법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때로는 닉네임을 짓는 방식이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을 표현하기도 해서 흥미롭기도 하다. 나처럼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따서 짓기도 하고 아니면 정말 의미 없이 말장난처럼 짓기도 한다.


궁금하다.

당신의 닉네임은 무엇인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 온라인 친구들의 닉네임 의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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