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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Oct 09. 2023

해무 속에서 바다를 찾는 방법

나의 위치를 찾는 법


해무가 가득했던

그날의 바다는

작은 배 한 척만으로도 충분했다.


텅 빈 공간이 가득 찼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느 겨울, 남편과 함께 궁평항을 갔다. 아이들이 각자 일이 있어 두 부부만 나온 간만의 여유 있는 시간이었다. 밥도 먹고 따뜻한 차도 마시며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잔뜩 부른 배를 소화시키려고 부둣가로 산책을 갔다.


유독 안개가 잔뜩 낀 날이었다. 해무가 수평선을 덮었고 하늘마저 흐려 온통 안개빛이었다. 바다 쪽을 한참 바라보았다. 경계 없는 그곳이 신비롭다기보다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부터가 바다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안갯속 같은 그곳.


온통 하얗기만 한 해무 속에서 바다라는 걸 알려준 건 저 멀리 보이는 점 하나, 작은 고깃배였다. 아무것도 없어 혼동스러운 때, 바다를 드러내준 건 그 작은 존재였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 하나가 하늘과 바다를 나누어주었고 바다가 더없이 넓어 보였다.


존재를 제대로 알려주는 단 하나만 있으면 된다. 하늘이 가지지 못하는 바다의 속성을 알려주는 한 척의 작은 배.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단 한 사람의 믿음과 지지로 우뚝 서는 사람처럼.


 버티고(vertigo) 현상이라고 들어 본 적이 있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비행착각을 일으켜 높은 고도와 빠른 속도로 비행을 하다 보면 방향감각을 상실하여 추락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밤의 검은 하늘과 검은 바다, 하늘의 별빛과 바다의 고깃배 불빛 등을 착각해서 일어나는 사고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자신의 감각에만 의지하지 않고 계기판을 보고 비행한다고 했다.


혼란스러운 삶 속에서 혼란스러울 때 나를 잃지 않게 해주는 고깃배나 계기판이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넘쳐나는 정보화 시대, 눈과 귀를 가리는 많은 것들 사이에서 내 중심을 잡을 수 있게 스스로 의지하는 무언가. 지금 내 삶이 이리저리 흔들릴 때 내 위치를  알아챌 수 있게 하는 무언가가 뭐가 있을까?


작은 조각배를 보며 나를 생각해 본다. 내 주변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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