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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Oct 11. 2023

나의 왼쪽 엄지

나를 사랑하는 시작


나는 어려서부터 내 왼쪽 엄지가 싫었다. 가뜩이나 짜리 몽땅하고 통통해 예쁘지 않은 손인 데다 옆으로 늘어난 모양처럼 납작한 엄지손톱까지 너무 못생겼다.

“너 엄지가 왜 그렇게 생겼어?”

철없던 시절, 동네 친구들이 이렇게 물어 올 때면 손을 뒤로 숨기며 입을 다물었다. 뭐, 손톱이 납작한데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그저 부끄러울 뿐이었다. 게다가 그나마 나은 오른쪽과 짝짝인 유난히 납작한 왼쪽 엄지이었다.


새벽 버스를 타고 중고등학교를 등하교하던 시절, 버스 손잡이를 잡는 것도 신경 쓰였다. 다른 손가락은 손잡이 아래로 감춰져도 숨길 수 없이 드러나게 되는 게 엄지손가락이었다.  빽빽한 버스 안에서 좌석의 손잡이를 잡을 때마다 나는 항상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왼손으로 손잡이를 잡아 엄지가 보이는 것이 내 치부가 드러난 듯 창피했다. 오른손으로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왼쪽 엄지손톱을 나머지 네 손가락 아래로 넣어 숨기도 잡았다. 불편했지만 그랬다.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터인데 내 스스로 자꾸 감추려 했다.

  

고등학교 3학년, 같은 반 친구가 우연히 내 왼 손을 보고 말했다.

“어? 우리 이모도 이런 손톱인데. 이런 손이 손재주가 진짜 좋대. 너도 그렇잖아.”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한 친구가 와서 이야기를 하자 다른 친구들이 몰려 내 왼 엄지손가락을 신기하듯 보았다.

“아니야, 우리 엄마도 그랬어.”

“와 진짜 납작하다. 나도 그런 얘기 들은 적 있어.”

잡혀있던 엄지손가락을 빼면서 숨기자 친구들이 한 마디씩 건넸다.


그렇게 보기 싫었던 손톱이 친구의 긍정적인 말에 조금은 괜찮아 보였다. 점점 내 손톱을 자꾸 보게 되었다. 내 작은 손재주들이 진짜 이 손톱에서 온 걸까 근거도 없이 상상해보기도 했다.  사실 손톱 모양으로 무슨 재능이 발현된다는 건 말도 안 되지만 자꾸 보다 보니 감추던 마음이 조금씩 희석되기 시작했나 보다. 그 후로도 내 엄지손톱을 본 사람들에게 가끔 그 이야기를 듣는다.

교사가 되어 코로나가 한창일 때 학교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온라인수업 영상을 찍어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께도 자료를 공유했다.  

어느 날, 어딘가에서 그 수업 영상을 본 대학 친구한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엄지만 봐도 넌 줄 알았다.”

얼굴도 나오지 않는 영상에서 유일하게 나온 손을 보고 바로 나인 줄 알았다니! 이후로도 오랫동안 소식을 몰랐던 몇몇 대학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특이했던 나의 왼손은 어느새 지문처럼 내가 되어 있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나의 왼손 엄지손톱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의미를 덜 두는 방법을 배웠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도 알았기 때문이다. 가끔 반 아이들한테도 일부러 얘기하기도 한다. 선생님 엄지손톱은 정말 납작하다고. 하지만 이 손으로 모든 걸 다했다고. 손톱이 납작하다고 못할 것도 없고 좋은 일, 궂은일은 모두 이 손이 다 해냈다고. 그리고 내 손이니까.


그림 그릴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 때면 손을 그리곤 했다. 오른손잡이이니 항상 왼손을 그리게 된다. 바라보고 바라본다. 찬찬히 관찰한다. 손 모양대로 서서히 연필을 움직인다. 손톱의 모양대로 짧고 납작하게 그려나간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동안 참 열심히도 움직였다. 고생했네. 내 손.’

때로는 뭐, 어때의 기세로.


어느새 내가 되어있는 사랑하는 나의 왼쪽 엄지 손가락.

이제 나는 납작한 손톱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낼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아진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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