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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픈손가락 Aug 21. 2022

읽고 쓰고, 쓰고, 쓰고, 또 써라!

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인생의 가르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친절하지 않다. 또 인생의 답은 노력없이 그냥 주어지지도 않는다.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세상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흘러감이 참 속절없이 빠르기 때문이다. 흘러버린 시간들을 다시 되돌려 보고 되짚어 보면 참 까마득하단 생각이 든다.


지나보면 찰나(刹那)의 시간을 우린 참 촘촘히도 버텨왔다. 문제는 우린 그걸 앞서 가지 못하고 매번 쫓기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이름 모를 책임감과 열망에 짓눌려서. 잘 살아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그 살아냄이 힘들고 고됐다. 지난 날을 추억하다 보면 자꾸 눈물이 나는 이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고됨 때마다 내 곁엔 늘 책이 있었다. 집안의 종손에 장남인터라 죄다 동생들 뿐 그 흔한 사촌 형마저 없어서 제대로 된 조언 들을 곳도 없었다. 대부분 접하는 문제는 언제나 늘 처음이었고,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 결론이 늘 책이었는지 모른다. 난 그렇게 겉 멋이 아닌 실용 독서에 일찍 눈을 떴다.


내가 책을 통해 얻은 최고의 선물은 자기신뢰감이다. 처음 겪는 막막한 상황에서도 난 실용 독서를 통해 해답을 찾을 수 있었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매번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어찌하면 정말로 하루도 빼먹지 않고, 1,000일 넘는 시간동안 그리 꾸준히 할 수 있냐고. 그럼 나는 답한다. 책을 읽어 사고(思考)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욕심까지 나면 가능해진다고.


겪으면 겪을수록 사고(思考)의 힘은 놀랍다. 옛 성인들이 왜 그리 ‘생각’이란 것을 강조했는지 난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다. 이 흐름은 굉장히 자연스럽다. 처음엔 눈으로 글자를 따라 읽는다. 책을 읽는 나는 앞서 가는 텍스트를 쫓는 상황이 된다. 그러다 읽는 의식과 글자를 읽는 행위가 엇비슷하게 보조를 맞추는 순간이 오는데, 이땐 읽음과 동시에 저자의 말이나 주장이 곧바로 이해가 된다. 마지막은 저자의 말이나 주장이 이해되는 상황에서 나만의 생각이 들고, 비판적인 관점들이 생기며, 자신만의 주장이 또렷해지는 단계다. 생각이란 존재는 이때부터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이런 ‘생각’ 만드는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일명 ‘독서 되새김질’, 독서를 음식 입속으로, 뱃속으로 우겨 넣듯 해서는 안 된다. 소화가 뒤 따르지 않는 책 읽기는 제대로 된 독서가 아니다. 왜 책을 정성껏 애써 읽어라 말하는 줄 아는가. 바로 소화 때문이다. 음식을 씹지도 않고 무작정 뱃속으로 직행시키면 소화가 힘들다. 대신 먹을 때 꼭꼭 씹고, 열을 가해 조리하면 비교적 소화는 쉬워진다. 소화가 잘 돼야 영양분이 골고루 퍼져 근육을 만들고, 신진대사를 도와 우리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 내게 제대로 된 참 독서는 소화를 통한 되새김질 독서다.


둘째, ‘실행력과 실천’이다. 책을 읽고 만든 지식이나 생각을 머릿속에만 고이 모셔 두는 것은 바보다. 꺼내고 베풀고 써야 한다. 그러는 게 자신에게 좋고, 남을 위해서도 좋다. 절대 쌓아 두는 것만으로 끝내면 안 된다. 생명의 숨을 한껏 불어넣은 뒤 세상에 다시 내놓아라. 그것이 책을 읽고 난 뒤 깨달음을 얻은 자들이 할 일이다. 읽은 것을 정성 다해 소화시키고, 쌓인 지식과 생각에 숨 불어넣은 뒤 세상에 내놓는다. 모름지기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로 인해 삶을 바꿔 본 사람이라면 그리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라 가르치는 책은 없다. 좋은 책은 자꾸 베풀어서 나누라 한다. 결국 돌아돌아 나를 살리는 길임을 에둘러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책 읽기의 정점은 글쓰기다. 글쓰기는 소화된 생각을 현실로 내어주는 궁극적 실천 행위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정리만 해도 되고, 호되게 꾸짖어도 좋으며, 겪은 일 그대로를 적어도 된다. 글쓰기는 걷고 있던 독서에 날개를 달아준다. 우린 글쓰기를 이용해 훨씬 멀리 그리고 자유롭게 먼 곳까지 날아가 볼 수 있다. 겪어보면 알겠지만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꺼내 쓸 수 있는 기술은 엄청난 행복이고, 축복이다. 실력의 판가름은 작가의 생각을 소화해 자신의 생각과 얼마나 잘 짜맞출 수 있느냐에 달렸다. 우리의 새로운 삶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읽고 소화시켜 쓰는 일을 계속해 온 사람은 알고 있다.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언제나 과정이지 결코 결론이 아니란 사실을.


■ 쓰고 쓰고 쓰고 또 써라!


글을 쓰게 된 특별한 목적이나 이유 같은 것은 없다. 단순히 도피처로 생각한 도서관에서 책으로 시간을 때우다 보니 정말 우연에 우연이 겹쳐 ‘생각’이란 씨앗을 얻게 되었고, ‘생각’을 더 키워 보려는 욕심이 나 열심히 노력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욕심이 하나 더 생겼다. 글쓰기를 통해 막연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었다. 잘 하진 못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고, 아직까지 식지 않은 열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 내겐 얼마나 다행스럽고 기쁜 일인지 모른다. 이 좋은 걸 몰랐다면 어땠을까 싶다. 아마 평생 후회했을 것이다.


글을 잘 써 보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단순하지만 무식한 것이었다. 책을 많이 읽어 눈에 익혀 둔 문장을 가이드 삼았고, 좋은 문장 패턴이나 표현은 발견하면 기록해 뒀다. 글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날 때마다 챙겨 읽던 책들은 열정에 불을 붙여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내가 한 일은 독서를 하고, 필요한 가이드를 만들고, 기록하고, 쓰고, 쓰고 또 썼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 글 쓸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 미라클모닝을 시작했고, 이른 새벽엔 맑은 정신으로 글이 잘 써진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글쓰기를 한다.


무조건 글은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 속도가 빨라지든 문체가 좋아지든. 가속도를 붙이고 싶다면 그냥 쓰지 말고, 관련된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좋다. 글 솜씨가 한층 좋아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습관이 들면, 원하는 것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드디어 생각을 자유자재로 내는 기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기술을 ‘열린 사고’라 부르고, 이걸 갖게 되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이 달라진다.


필사를 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는 아니다. 그래도 필사를 포기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려운 책 말고 가벼운 에세이나 시집 필사를 권하기도 한다. 나도 종이 위에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면서 하는 필사는 좋아한다. 필사를 ‘손으로 하는 명상’이라 칭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얼마나 격하게 공감이 되던지 짜릿한 전율마저 느껴졌다.


필사든, 타이핑이든 일단 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쓰기’라고 해서 무조건 종이 위에 펜으로 쓰는 것만 말하는 건 아니다. 쓰고 싶은 글을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것도 ‘글쓰기’다. 도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손으로 쓰는 게 부담스럽다면 종류 상관없이 가장 편한 도구를 사용하면 된다. 어떤 도구든 어떤 방식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쓰는 것’이란 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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