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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 Sep 24. 2023

무엇을 예상해도 그 이상, 카파도키아

튀르키예 여행기 ②카파도키아

 이번 튀르키예 여행 동안 우리는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 딱 두 도시만 여행하기로 했다. 이미 대학생 시절 3주 동안 터키 배낭여행을 한 적 있는 J가 이스탄불만 봐도 일주일이 부족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일주일이라는 길지 않은 여행 기간을 고려했을 때, 이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기보단 한 도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래도 이스탄불만 보기에는 아쉬워 대표 여행지인 카파도키아를 국내선으로 다녀오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시내까지의 거리, 비행기표 가격 등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이스탄불 입국 후 바로 국내선을 타고 카파도키아로 들어간 후 만 이틀을 보내고 이스탄불로 넘어오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그리고 이 이스탄불로 넘어오는 비행기에서 4시간 연착 사달이 났다. 튀르키예 여행기 위기 편 참고)


 터키는 생각보다 먼 나라였다. 국적기로 직항을 이용했지만 이스탄불까지 12시간이 걸렸고 거기서 환승대기 2시간, 다시 카이세리 공항까지 2시간, 짐 찾는데 1시간, 다시 셔틀을 타고 공항에서 숙소까지 2시간이 걸려 숙소에 도착하니 비행기를 탄 시간부터 거의 18시간이 지난 후였다. 정말 완전히 피곤한 상태로 쓰러지듯이 잠이 들었다. 그리고 시차부적응으로 꽤 이른 아침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루프탑으로 올라갔는데 정말 다른 세상에 와있는 기분이 났다. 여기가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맞나. 그날은 벌룬이 못 뜬 날이었는데, 벌룬이 없어도 카파도키아는 뭔가 다른 행성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멀리 날아온 만큼 다른 세상이었다. 내가 알던 세상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

첫날 아침, 처음으로 맞이한 괴레메의 풍경

 카파도키아는 그 무엇보다 열기구, 벌룬 투어가 유명한 곳이다. 터키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다른 건 몰라도 '오! 열기구 탔어?'를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물어보는 만큼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고 많이 알려진 부분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 투어를 기대했기에, 날씨 영향 때문에 못 탈 것을 고려하여 도착한 밤 바로 다음 날 새벽부터 벌룬 투어를 예약했었다. 터키에 도착하니 이미 첫날 벌룬 투어는 취소된 후였고 꼭 다음날은 벌룬 투어를 탔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간절함에 의문부호를 달아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우연히 들어간 기념품 샵 카페트 아저씨였다.


 J가 깜빡한 운전면허증을 가져오기 위해 숙소에 간 사이 들어간 기념품샵에서 만난 카페트 아저씨는 꽤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냐, 언제 왔냐, 얼마나 머물 이야기냐, 어딜 여행할 계획이냐 등의 이야기 끝에 오늘 아침 벌룬 투어를 못 타게 되어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자, 아저씨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벌룬 투어만큼 값어치를 못하며, 환경에도 안 좋고, 카파도키아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하는 투어는 없다, 네가 그걸 타지 못하더라도 네가 잃을 것은 전혀 없다고. 본인도 한동안 투어가이드로 일했다며 카파도키아는 실제로 네가 땅을 밟으며 자연을 즐기는 곳이며, 트레킹을 하며, 혹은 농장체험을 하며 자연을 느끼고 이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카파도키아를 제대로 즐기는 방식이라고 이야기했다.


 관광이 주 산업인 터키, 특히나 공항이며 길거리이며 호텔이며 모두가 벌룬투어를 권하는 괴레메(카파도키아의 중심 마을)에서 현지인이 벌룬투어를 하지 말라 하자 나는 좀 놀랐다. 벌룬 투어가 터키인의 엄청난 외화벌이 수단이라는 점이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벌룬투어는 내가 방문한 23년 9월 초 기준 150~210유로 수준이었기에, 거의 인당 30만원에 육박하는 비용이었다. 한 벌룬당 10명만 태워도 한 벌룬당 3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오염 등을 고려했을 때, 그리고 이 자연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벌룬투어가 이제는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나는 벌룬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벌룬투어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좀 사그라들었다. 그런 마음의 영향인지 둘째 날 아침 벌룬투어는 5시에 집합 이후 30분 대기 끝에 결국 취소되어 버렸고 나는 이것이 마치 운명인 것처럼 느껴져 마지막날 아침은 벌룬투어를 신청하지 않았다.


 실제로 단 이틀뿐이었던 카파도키아의 시간에서 나는 카페트 사장님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렌트카를 타고 괴레메 파노라마, 셀레메 수도원, 으할랄라 계곡, 젤베 야외 박물관, 로즈밸리 등을 다디며 카파도키아의 진가를 알 수 있었다. 그곳은 정말로, 정말로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리고 그 자연이 탐험 가능한 곳이란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었다.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딴판이고, 비교적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미국 서부의 그랜드케니언이나 앤텔롭캐넌보다도 더 다채로운 모습이었다. 심지어 이곳의 그 수많은 돌기둥 아래 몇백년간 사람들이 숨어서 지내며 생활을 했다고 하니 자연의 경이로움을 넘어서 인간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내 맘을 사로잡은 곳은 레드밸리, 로즈밸리였는데 마치 대형 생초콜릿이 빚어있는 것 같은 밸리와, 그리고 그 옆 녹차가루를 뿌려놓은 밸리 사이사이로 트레킹을 하며 정말 가슴이 뻥뚫리는 기분이었다. 그 트레킹 덕분에 렌트카 사장님께도 비교적 덜 화를 낼 수 있었다.


괴레메 파노라마



로즈밸리 대자연 앞에서 나도 한껏 자세를 뽐내봤다

  

 마지막 날 벌룬을 타진 못했지만 그날 아침에 수십개의 벌룬이 뜬 모습을 봤다. 수백 개의 열기구가 두둥실 떠오른 모습은 분명 장관이었다. 저 하늘 위에서 기암괴석을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호텔에서 바라본 벌룬 풍경에 만족했으면서도 공항셔틀에서 만난, 벌룬 투어만을 위해 카파도키아에 왔다는 루마니아 친구의 경험담을 들으니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기구를 탔어야 했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왔다 갔다 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카파도키아가 가진 그 자연의 웅장함, 시간과 바람, 물이 빚어낸 장관은 정말 세계의 그 어떤 장면과 비교해서도 뛰어났다는 점이고, 내가 그곳을 직접 내 발로 밟으며 정말 행복했다는 점이다.


이틀이나 벌룬이 못 뜬 탓인지 정말 많은 벌룬이 떴다. 지평선에 이륙을 준비하는 벌룬 떼가 보인다.


 누군가 "열기구를 꼭 타야 할까요?"라고 물어본다면, 열기구는 타도 좋고 안타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카파도키아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이 밸리를 직접 밟고 탐험하는 시간은 절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이나 ATV를 타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카페트 아저씨의 말처럼 이곳은 내 발로 걸을 때 더욱더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곳이다. 로즈밸리에 일몰해가 비추지 않아도, 폭우가 쏟아져도 그곳은 방문할 가치가 있다. 비가 온 덕에 깨끗한 포도를 먹었고 잠깐동안 쏟아진 폭우 이후 저 멀리 밸리에 걸친 양쪽이 온전한 쌍무지개를 잡았다. 나는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카파도키아의 자연은 당신이 어떤 것을 예상하던 그 이상일 거라고.  

10분간의 강렬한 폭우 뒤 만난 완전한 무지개다리

 


 


희소의 튀르키예 여행기


①위기 - 튀르키예 나한테 왜그래~~~  https://brunch.co.kr/@fininlove/43

②카파도키아 - 무엇을 예상해도 그 이상, 카파도키아 https://brunch.co.kr/@fininlove/49

③이스탄불 -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 것, 이스탄불 https://brunch.co.kr/@fininlove/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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