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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미 Jul 08. 2021

양대 인맥

[미출간본]나의 우정과 캐네디언 불곰을 위하여

일생일대의 기묘한 사랑을 나는 친구에게서 느꼈다. 열일곱 살 내게는 진짜 우정 하나가 생겼는데 생각이 적당히 여물었을 십 대, 터놓진 않았지만 그 나이가 느끼는 풍파가 서로 닮은 게 느껴져 그냥 이끌렸던 것 같다. 뭐가 얼마나 힘든지 자세히 들여다본 것도 아니고, 어쩌다 서로에게 빠졌나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섭리처럼 지극히 당연한 친구가 되었다. 


이름 석 자 중 두 글자나 겹친다는 것도 운명의 증거였고 하루 차이 나는 생일도 근거들 중 하나였다. 성인이 된 후 눈앞에 시간은 줄었지만 마음에서 멀어지는 비극은 없었고 오히려 더욱 서로의 편이기만 했다. 미천했던 과거를 전부 알고 있는 유일한 증인이지만 단 한 번도 기밀이 새어 나간 적 없는 완벽한 서로의 편이었다.


질투는 인간의 본능이라 했는데 우리의 영역에서는 그 본능조차 발동되지 않으니 질투하지 않는 내가 기특해 우월감마저 느꼈던 것 같다. 만약에 본능이 이겼다면 내 못난 그릇됨에 패배감을 맛봤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은 나 자신이 가장 단단해지는 경험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어쩌다 보니 도보 거리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우리는 죽고 못 사는 걸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기에 별일 없이 살다가 아주 별일 없이 부스스 일어나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진다. 그 앞에서 한 번도 내 밑천이 부끄러운 적이 없었고, 1초도 인위적으로 가꾼 적이 없었다. 말도 안 되게 편하고 기묘했다. 내 사랑의 크기가 더 커도 상관없는 일이고 친구의 것이 더 커도 관심 없는 그냥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 친구는 그렇게 내 인생 첫 번째 산맥이다.


독신주의는 아니었지만 배우자를 고르는 바로미터가 이 우정이다 보니 최종 관문까지 통과하는 사람이 없어 결혼의 가능성을 희박하게 뒀었다. 부모님의 기대치에 대한 시늉으로 찾는 데까지 찾아봤지만 그다지 희망적이진 않았다. 상대방이 문제가 아니라 내 굳건한 까다로움 때문에 맞아떨어지는 사람을 찾는 건 현생에서 일어날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결혼을 했다. 누군가는 후광이나 빛을 봤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이 사람과 결혼하겠단 느낌이 왔다고도 하지만 내 경우는 도플갱어를 만난 기분이었다. 도플갱어는 맞는데 오묘하게도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와 닮아 있었다. 이 사람과의 결혼은 원래 한 몸이었던 두 조각이 합체하는 것이란 자명함이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미세한 차이마저 같은 모습으로 변모해 닮아버리니 속앓이의 흔적은 희박했다. 


가장 감사한 건 남편은 수많은 이길 방법을 갖고도 늘 내게 져주는 사람이다. 이길 재간이 없어서가 아님을 알아 무던히 고맙다. 나로 하여금 깎아 내기를 자처해 가장 사람답게 변화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귀인이다. 완전체는 어차피 없기에 우리는 명백한 부족함을 인정하고 인내하며 살고 있지만 완벽하지 않아서 서운할 일은 어디에도 없으니 요행히 건진 축복이란 생각이다. 남편은 내 두 번째 산맥이다.      


양대 산맥만으로 내 삶은 부족할 것이 없다. 더 바랄 순 없지만 욕심이 있다면 부디 이 두 산맥이 나보다 더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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